모임마다 빠지지 않고 나가면서도, 정작 대표 자리만큼은 한 번도 맡고 싶지 않았다면 혹시 성격이 어중간한 것일까요? 저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건 어중간함이 아니라, 아직 이름조차 없었던 '제3의 성향'이었습니다. 외향과 내향 사이 어딘가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축에 서 있는 사람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이향인(ambivert·앰비버트)'이라고 부릅니다. 행사 개근, 그런데 리더는 절대 사양 — 이게 중재자 성향이었습니다친구가 그 질문을 던졌을 때, 저는 솔직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너는 행사마다 개근하면서 왜 학생회는 절대 안 하냐?" 그 순간 제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단어는 '책임감 부족'이었습니다. 스스로도 반쯤 그렇게 믿고 있었으니까요.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아이에게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했을까, 뒤늦게 후회한 밤이 적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저를 짓눌렀던 "넌 왜 이것도 못 하니"라는 말이, 어느 순간 제 입에서 아이에게 고스란히 나오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해결되지 않은 콤플렉스가 어떻게 아이에게 흘러가는지, 그리고 그 흐름을 어떻게 끊을 수 있는지 제 경험을 중심으로 풀어봤습니다. 아이를 다그칠 때, 사실은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 투영아이가 수학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제 안에서 뭔가가 울컥하고 올라왔습니다. 당시엔 "그냥 집중을 안 해서"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제가 학창 시절 수학 때문에 주눅 들었던 기억과 정확히 겹쳐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영(projection)입니다. 여기서 투영이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기 ..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는 말을 가장 공허한 조언으로 여겼습니다. 직접 바닥을 경험해보면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 알게 되거든요. 그런데 27년차 상담가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긍정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기술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납득하게 됐습니다. 자기 확언, 말만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일반적으로 자기 확언(Self-Affirmation)이라고 하면 거울 앞에서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는 행위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 확언이란 단순히 긍정적인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현실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먼저 인정하고 그로부터 다시 출발하는 자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천명관 작가의 신작 『아코디언』을 읽으며 1950년대 앵벌이 아이들의 이야기가 낯설기는커녕, 어릴 때 시내 골목에서 봤던 어떤 얼굴들과 겹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풍경이었는데, 지금 와서 다시 들여다보니 그게 풍경이 아니라 지워진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락의 존재,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나제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 골목이나 시내 중심가에는 신체적 결핍을 가진 분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습니다. 한쪽 다리를 다친 채 몸을 끌고 다니던 청소년,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며 손을 내밀던 아이들. 그게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얼굴들이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여기서 '결락의 존재'란 신체적·경제적 결핍으로 인해 사회의 주류 공간에서 배제된 채 살아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꽤 오랫동안 제 자존감이 건강한 편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한 동료가 큰 성과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제 안에서 올라온 감정이 기쁨이 아니라 묘한 불쾌감이었을 때, 처음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습니다. 자존감은 높고 낮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왜곡된 형태, 즉 나르시시즘으로 굳어버리는 경우가 있고, 그 출발점이 어릴 때부터 반복된 비교와 석차 경쟁이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왜곡된 자존감, 나는 몰랐다자존감의 반대말이 단순히 '낮은 자존감'만은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개념을 자존감의 또 다른 반대편으로 봅니다. 여기서 나르시시즘이란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사랑한 나머지, 타인의 성공조차 자신의 행복을 침해하는 것으로 느끼..
밖에서 온종일 굽신거리다가 집 문을 여는 순간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게 짜증이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가족에게요. 제가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이게 단순한 피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압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패턴을 '전위(Displacement)'라고 부르는데, 분노의 방향이 실제 원인이 아닌 더 안전한 대상으로 옮겨가는 현상입니다. 가족에게 유독 날카로워지는 사람이라면, 이 글이 뭔가 건드릴 수 있습니다. 왜 하필 가족에게 짜증이 나는 걸까 — 방어기제의 함정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가족을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직장에서 부당한 말을 들어도 꾹 참고, 거래처 앞에서는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정작 집에 돌아오면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날카롭게 반응하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