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원하는 게 뭐예요?"라는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혔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단순한 말실수로 흘려보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게 단순한 어색함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대화가 어려워지는 건 성격 탓이 아니라 뇌와 심리 구조가 함께 작동한 결과였습니다. 18년간 대화 훈련을 연구한 전문가의 분석과 제 경험을 엮어 그 구조를 풀어봤습니다. 자존감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가려지는 것 — 먹구름과 태양의 비유자존감을 키워야 한다, 높여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 자체가 자존감을 마치 통장 잔액처럼 채워 넣어야 하는 무언가로 만들어버립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봤는데, 이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자존감이 낮다고 느껴지는 순간마다 스스로를 더 강하게 다그..
즐거운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왜 오히려 더 지칠까요? 쉬려고 누웠는데 머릿속은 '아까 그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을까'를 계속 돌리고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이 패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문제는 관계 자체가 아니라 모임이 끝난 뒤 제가 뇌에게 무엇을 시키고 있었느냐였습니다. 즐거웠는데 왜 집에 오면 허할까 — 자기 검열의 함정퇴근 후 오랜 친구들을 만나 웃고 떠들다 집에 돌아온 날 밤, 저는 침대에 누워서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그 타이밍에 끼어든 말이 분위기를 깼던 건 아닐까', '상대가 잠깐 웃음을 거뒀던 건 내 얘기가 재미없어서일까'. 이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이 현상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과도한 자기 모니터링(self-monitoring), 쉽게 말해..
나이가 들수록 옷차림에 신경 쓰는 사람이 외려 더 오래 젊어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저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좀 의아했습니다. 편안하게 입는 것이 나이 든 사람의 특권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정작 제가 늘어난 티셔츠에 슬리퍼를 끌고 편의점을 드나들던 시기, 거울 앞에 서면 점점 낯선 사람이 보였습니다. 옷차림이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세상에 소개하는 사회적 언어'라는 것,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옷차림이 사회적 언어가 되는 이유심리학에서는 '인상 형성(impression formation)'이라는 개념을 씁니다. 여기서 인상 형성이란 타인과 처음 마주치는 순간, 상대의 외모·표정·복장 등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그 사람의 성격, 지위, 신뢰도까지 순식간에 판단..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꽤 오랫동안 제 자존감이 건강한 편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한 동료가 큰 성과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제 안에서 올라온 감정이 기쁨이 아니라 묘한 불쾌감이었을 때, 처음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습니다. 자존감은 높고 낮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왜곡된 형태, 즉 나르시시즘으로 굳어버리는 경우가 있고, 그 출발점이 어릴 때부터 반복된 비교와 석차 경쟁이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왜곡된 자존감, 나는 몰랐다자존감의 반대말이 단순히 '낮은 자존감'만은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개념을 자존감의 또 다른 반대편으로 봅니다. 여기서 나르시시즘이란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사랑한 나머지, 타인의 성공조차 자신의 행복을 침해하는 것으로 느끼..
저도 처음엔 그게 우정이라고 믿었습니다. 10년 넘게 쌓인 세월이 있으니 그냥 참는 게 맞다고, 그게 어른스러운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죠. 그런데 돌아보면 그건 우정이 아니었습니다. '정'이라는 이름을 빌린 소모전이었습니다. 가짜 관계를 끊지 못한 채 자존감이 바닥을 찍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미운 정도 정이라는 착각이 얼마나 조용하게 한 사람의 삶을 갉아먹는지를요.미운 정이 관계를 망치는 이유그 친구와의 관계를 끊지 못했던 이유를 솔직하게 꺼내자면, 딱 하나였습니다. "그래도 이만큼 함께했는데"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함정인지 그 안에 있을 땐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매몰 비용 오류(Sunk Cost Fall..
저도 처음엔 나를 사랑하라는 말이 그저 SNS 감성 문구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면서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냈는데, 정작 제 몸에 멍이 들어도 언제 생겼는지조차 몰랐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완전한 번아웃을 겪고 나서야,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귀찮더라도 나에게 좋은 것을 해주는 작은 행동의 반복임을 실감했습니다. 번아웃은 예고 없이 오지 않았다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번아웃(burnout)이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듯 찾아오는 줄 알았습니다. 여기서 번아웃이란 신체적·정서적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어 일상적인 기능이 어려워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오랫동안 축적된 피로와 자기 방치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터지는 것인데, 제 경우엔 그 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