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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은 당신을 대할 때가 아니라, 식당 종업원을 대할 때 드러납니다. 저는 이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한동안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육아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비로소 관계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쏟아왔는지 깨달았습니다.

이해관계로 맺은 인연은 결국 드러납니다
일반적으로 인간관계는 쌓아갈수록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건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넓게 쌓인 인맥 중 상당수는 이해관계(利害關係), 즉 서로의 이익이 맞닿는 지점에서만 유지되는 조건부 관계였습니다. 이해관계란 쉽게 말해 내가 저 사람에게 얻을 것이 있고, 저 사람도 나에게서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관계입니다. 그게 사라지는 순간 연락이 끊기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유형의 사람을 가려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가 서비스직 종사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한테는 더없이 친절하면서도 식당 직원에게 반말을 서슴없이 하는 지인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 태도가 저를 향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이중 기준 행동(double standard behavior)'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이중 기준 행동이란 이해관계가 있는 대상과 없는 대상에게 전혀 다른 태도를 적용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인격적 일관성이 없다는 신호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self-esteem)이 높은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낮습니다. 여기서 자존감이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뜻하며, 이것이 충분한 사람은 타인을 낮춤으로써 스스로를 높일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무례한 사람을 '강한 사람'으로 읽었던 제 과거 기준이 얼마나 틀렸는지를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 나에게 잘하면서 약자에게 함부로 구는 사람 →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유형
- 어디서든 일관된 태도를 보이는 사람 → 자존감이 안정된 유형
- 이익이 사라졌을 때 연락이 끊기는 사람 → 관계 유지 비용만 높은 유형
감정노동을 줄이자, 관계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젊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 앞에서도 표정을 관리하고, 없는 공감을 억지로 만들어 내며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가 개념화한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 바로 그 상태입니다. 감정노동이란 실제 내면의 감정과 다르게 외적 표현을 조율하는 행위로, 장기간 지속될 경우 소진(burnout)과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출처: National Center for Biotechnology Information).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감정노동을 줄였다고 해서 관계가 텅 비어버린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억지로 유지하던 관계들이 정리되고 나니, 전혀 힘들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가는 몇 사람의 존재가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제가 있는 그대로 말하고 행동해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 사람들, 코드가 맞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육아로 외출이 줄어든 시기가 오히려 이 기준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억지로 만남을 이어갈 여건이 안 되니 자연스럽게 진짜 연락을 먼저 해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분됐습니다. 관계의 폭이 좁아진 것을 불안해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그 좁아진 공간에 훨씬 단단한 것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자아형성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
관계를 정리하고 나자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흔히 자아를 찾는다고 표현하지만, 제 경험상 그 말은 좀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자아(自我, self)는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아형성(self-construction)이라고 부릅니다. 자아형성이란 매일의 선택과 행동, 그리고 그것을 반성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 능력이 쌓여 점진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입니다.
메타인지란 쉽게 말해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능력'입니다. 제가 5년 전 썼던 글을 다시 읽었을 때 낯이 뜨거웠던 경험이 있는데, 그 창피함 자체가 메타인지가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오늘의 제가 과거의 저를 부끄럽게 여길 수 있는 것은, 그사이 어딘가에서 기준이 성장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에는 이런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스스로 설계한 삶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 방식이 객관적으로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가장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읽고서야 관계를 줄이기로 한 결정에 대한 불안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남이 정해준 기준이 아닌, 제가 직접 경험하고 판단한 기준으로 만들어가는 관계와 삶.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인맥을 줄이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요?
A. 일반적으로 인맥이 많을수록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감정노동이 수반되는 관계는 장기적으로 소진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억지로 유지한 관계보다 자연스럽게 남은 소수의 관계가 위기 상황에서 실질적인 지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정리보다 선별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Q. 이해관계로 맺어진 관계는 다 나쁜 건가요?
A. 이해관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비즈니스 관계처럼 목적이 명확한 경우에는 서로의 역할이 분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해관계에 기반한 관계를 마치 진심 어린 친밀감으로 포장할 때이고, 그 경계가 흐릿해질 때 상처가 생깁니다.
Q. 코드가 맞는 사람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나요?
A. 제 경험상 가장 확실한 신호는, 대화 후에 에너지가 빠지지 않고 오히려 충전된 느낌이 드는지 여부입니다. 할 말을 고르고 반응을 계산해야 하는 관계는 대화 후에 피로감이 남는 반면, 코드가 맞는 사람과는 별 얘기를 안 했어도 만족스럽습니다. 이 차이가 꽤 직관적으로 느껴집니다.
Q. 과거의 나를 부끄러워하는 게 정상인가요?
A. 정상일 뿐 아니라, 오히려 좋은 신호입니다. 메타인지가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사이 기준이 올라갔다는 증거입니다. 부끄러운 감정을 자책으로 끝내지 않고 성장의 지표로 읽는 연습이 중요합니다.
결론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고립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직접 좁아진 일상 속에서 체감했습니다. 이해관계를 걷어내고 나면 감정노동 없이도 유지되는 관계가 보입니다. 그 관계들 안에서 저는 계산 없이 말하고, 계산 없이 듣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제 자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관계의 폭을 줄이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건 남은 관계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는 질적 성장입니다. 오늘 한 번쯤 주변을 돌아보고, 만난 후에 에너지가 빠지는 관계와 채워지는 관계를 구분해 보시는 것, 그게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