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처음엔 그게 우정이라고 믿었습니다. 10년 넘게 쌓인 세월이 있으니 그냥 참는 게 맞다고, 그게 어른스러운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죠. 그런데 돌아보면 그건 우정이 아니었습니다. '정'이라는 이름을 빌린 소모전이었습니다. 가짜 관계를 끊지 못한 채 자존감이 바닥을 찍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미운 정도 정이라는 착각이 얼마나 조용하게 한 사람의 삶을 갉아먹는지를요.미운 정이 관계를 망치는 이유그 친구와의 관계를 끊지 못했던 이유를 솔직하게 꺼내자면, 딱 하나였습니다. "그래도 이만큼 함께했는데"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함정인지 그 안에 있을 땐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매몰 비용 오류(Sunk Cost Fall..
솔직히 말하면, 저는 꽤 오랫동안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거창한 자기 긍정 선언 같기도 하고, 요즘 유행하는 마케팅 문구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퇴근 후 저녁, 침대에 누워 바디로션 하나 바르기 귀찮아 그냥 잠든 날 밤, 그 의미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귀찮음을 이기는 것이 자기 돌봄의 실체다매일 퇴근 후 녹초가 된 상태로 집에 돌아오면, 씻는 것조차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안을 마치고 나서 바디로션을 꺼내는 그 짧은 동작이 어떤 날은 정말 불가능한 미션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 그냥 잠들고, 아침엔 푸석한 피부와 밀린 피로를 안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꼭 이런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나 자신을 ..
평균적으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1.4명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 1.4명 안에 가족이 들어가지 못하는 집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저는 한동안 남의 일처럼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도 그 통계 안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관계의 온도 — 부모를 '사람'으로 보지 못했던 시절독립하고 나서 몇 년간, 저는 부모님과의 거리를 '성숙함'이라고 착각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 통 드리는 걸 미루고, 명절에 얼굴 비추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뻔뻔한 자기 합리화였습니다.그러다 어느 주말 오후, 예고 없이 들른 부모님 댁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했습니다.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조용히 넘기고 ..
칭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이의 의욕을 꺾고 있었다면 어떨까요. 저도 그랬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에게 "수고했어"라고 건넸을 때, 아이는 말없이 방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부모의 말 한 마디가 아이의 내면에 어떤 지도를 그리는지, 직접 달라진 경험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했습니다. "타고났네"가 아이에게서 노력을 빼앗는 이유TV에서 손흥민 선수의 플레이가 나올 때 옆에서 "쟤는 타고났어"라고 무심코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감탄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아이한테는 꽤 다른 의미로 흡수됐을 것 같습니다.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것은 능력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계속 키워나갈 수 있다는 믿음 체계를 의미합니다. 스탠퍼드대..
인류가 120~130세까지 사는 것을 기본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수명이 늘어나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부모와 자녀가 성인 대 성인으로 7~80년을 함께 살아간다는 현실은 전혀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잔소리가 언제쯤 끝날까 답답했던 저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부모자식 관계가 완전히 새로운 형태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100년 동반자 시대, 우리는 아직 준비가 없다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 연구자들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변화를 "초장수 시대"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인지심리학이란 인간의 사고방식과 사회 구조가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가족 관계를 들여다본 연구..
성인의 친밀한 우정 관계는 평균 3~5명 수준에 그친다는 사회심리학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그것도 많다"고 느꼈습니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관계는 넓어졌지만 오히려 진짜 친구는 점점 희미해지는 역설, 그 이유를 파고들었습니다.자기 성찰 없이 좋은 친구는 오지 않는다제가 직접 겪어보니 중년의 외로움을 환경 탓으로 돌리기가 너무 쉽습니다. "바빠서", "나이가 들어서", "다들 각자 살기 바빠서"라고 설명하면 일단 납득이 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거울 앞에 서듯 자신의 인간관계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봤습니다. 오래 이어진 관계가 몇 개나 되는지, 그 관계를 끊은 쪽이 나인지 상대인지 세어봤더니 생각보다 스스로 먼저 등을 돌린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