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자녀의 성적 문제로 교수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부모가 있습니다.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 저도 모르게 "설마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아이 곁에 붙어 지내며 전업 육아를 하다 보면, 제가 얼마나 아이의 불안을 제 불안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부모의 조급함이 어떻게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지, 직접 겪어보니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부모의 불안이 아이에게 전염되는 이유전업으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주변의 말 한마디가 생각 이상으로 깊이 박힐 때가 있습니다. "엄마가 돼서 그것도 못 챙기냐"는 식의 말은 표면적으론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이미 조금씩 쌓여 있던 제 불안감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됩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이를 지켜보는 게 아니라, 제 ..
타인이 슬플 때 함께 울어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진짜 어려운 건,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상대가 가졌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일입니다. 전업으로 육아를 하다 보면 이 사실이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제 곁에 남은 사람이 몇 안 되더라도, 그 소수가 진짜인지 알아보는 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지레짐작 한 마디가 칼이 되는 순간전업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 제가 처음으로 크게 놀란 건 사람들의 질문이었습니다. "남편은 밥 먹고 나갔어요?", "아이가 왜 그래요, 엄마가 뭘 먹인 거예요?" 같은 말들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쏟아졌습니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날 밤 제가 숨죽여 울었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귀인 오류(Attribution Error)라고 ..
전업 육아를 시작한 첫 해, 저는 아이가 울 때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습니다. 매뉴얼 같은 건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때 우연히 접한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의 책 이야기가 그 답답함에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인생은 '안내서 없이 시작하는 여행'이라는 말 한 마디가 이상하게 위로가 됐거든요. 안내서 없이 던져진 삶, 히치하이킹처럼 시작된 육아더글라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지구가 우주 고속도로 공사 명목으로 허무하게 파괴되면서 시작됩니다. 예고는 있었습니다. 다만 지구인들이 그 공고를 알아볼 방법이 없었을 뿐이었죠. 살아남은 지구인 한 명은 외계인 친구 덕분에 우주를 떠돌게 되고, 그 여정에서 삶의 의..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은 당신을 대할 때가 아니라, 식당 종업원을 대할 때 드러납니다. 저는 이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한동안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육아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비로소 관계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쏟아왔는지 깨달았습니다. 이해관계로 맺은 인연은 결국 드러납니다일반적으로 인간관계는 쌓아갈수록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건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넓게 쌓인 인맥 중 상당수는 이해관계(利害關係), 즉 서로의 이익이 맞닿는 지점에서만 유지되는 조건부 관계였습니다. 이해관계란 쉽게 말해 내가 저 사람에게 얻을 것이 있고, 저 사람도 나에게서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관계입니다. 그게 사라지는 ..
소통의 93%는 말이 아닌 곳에서 일어납니다.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독박 육아를 하면서 하루 종일 아이와 단둘이 있다 보면 어른과 나누는 대화라곤 남편이 퇴근 후 던지는 몇 마디가 전부인 날이 많았는데, 그 말 몇 마디만으로도 왜 이렇게 위로가 안 되는지 오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문화심리학의 시각에서 보면 그 이유는 꽤 명확합니다. 우리가 진짜 소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 피부가 맞닿는 터치,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감정의 리듬이 서로 맞아떨어지는 경험—이것들이 통째로 빠진 채 메시지만 오갔던 겁니다. 메시지가 전달됐는데 왜 소통이 안 된 걸까 — 상호주관성의 배경SNS 시대에 들어서며 많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보냈으니 소통했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것 같은 감각이 찾아옵니다. 저도 그 감각을 꽤 오래 안고 살았습니다. 지금 한국은 청년부터 중년, 노년까지 전 세대가 조금씩 안으로 움츠러드는 시대입니다. 과연 혼자가 정말 편한 걸까요, 아니면 편하다고 믿고 싶은 걸까요? 고립은 왜 유행처럼 번지게 됐을까요즘 '쉬었음 청년'이라는 말이 통계에 자주 등장합니다. 매달 70만 명 이상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 하죠. 그런데 저는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청년 문제로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직접 겪기 전까지는요.육아를 시작하고 나서 하루 일과가 아이 중심으로 재편되면, 밖과의 접점이 하나씩 끊깁니다. 처음엔 일부러 SNS를 줄였고, 그다음엔 모임 연락을 미루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쌓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