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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창조적인 사람'이란 타고난 재능을 가진 극소수의 이야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울 앞에 서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이 남이 설정한 교환 가치의 레일 위를 달리는 것뿐이었다는 사실을요. 창조성이란 거창한 천재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새롭게 편집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실감했습니다.

교환가치만 좇다 잃어버린 것들
일반적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을 얻으면 행복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 공식은 절반쯤에서 균열이 생겼습니다. 취업 후 몇 년간 저는 스펙과 연봉,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조건들을 착실히 쌓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이 점점 지루해졌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 하루가 기대되는 느낌이 언제부터인가 사라져 있었습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교환가치(exchange value)란, 시장에서 다른 재화와 맞바꿀 수 있는 객관적 가치를 의미합니다. 반대로 사용가치(use value)는 나에게 실제로 얼마나 쓸모 있고 의미 있느냐를 가리킵니다. 이 두 개념을 처음 제대로 맞닥뜨렸을 때, 제가 살아온 방식이 얼마나 교환가치 일변도였는지 부끄러울 정도로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살고 싶지도 않은 동네의 아파트 시세를 매일 검색했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지역이니까, 가격이 오른다니까. 정작 그곳에서 제가 어떤 삶을 살지는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용가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입니다. 남의 기준으로 정해진 교환가치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습관이 쌓이면, 결국 남의 욕구를 대리 실현하는 삶이 됩니다. 그리고 그 삶은 아무리 잘해도 공허합니다.
출처: OECD Better Life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소득·고용 지표에서는 상위권이지만 삶의 만족도·일과 삶의 균형 부문에서는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집단적으로 교환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최적화된 시스템 안에서 달려왔다는 사실이, 그 숫자에 그대로 찍혀 있었으니까요.
- 교환가치: 시장에서 객관적으로 매겨지는 가격 기준의 가치
- 사용가치: 내 삶에서 실제로 쓸모 있고 의미 있는 주관적 가치
- 두 가치의 혼동이 지루함과 공허함의 근본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창조는 재능이 아니라 편집사고다
창조적이 돼야 한다는 말은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나는 창조적이지 않다"는 결론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인지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사고(思考)는 전혀 다릅니다.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여기서 재현이란 한 번 경험하거나 학습한 것을 머릿속에서 다시 불러와 새로운 조합으로 엮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생전 보지도 못한 것을 상상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창조란 결국 이미 존재하는 정보와 경험을 새로운 맥락으로 편집하는 일입니다.
이 관점이 바뀌자 제 독서 습관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고 "다 읽었다"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지금은 읽으면서 여백에 제 언어로 짧은 메모를 적고, 카드 형식으로 요약합니다. 중요한 것은 저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내가 이 내용을 왜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를 한 줄로 적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타인지(metacognition)의 시작입니다. 메타인지란 쉽게 말해 '내 생각에 대한 생각', 즉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스스로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는 1919년에 설립된 학교로, 인류 최초로 창조성을 교육 가능한 것으로 선언한 곳입니다. 이 학교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감각의 교차 편집, 즉 크로스 모달리티(cross-modality)였습니다. 크로스 모달리티란 하나의 감각 표현 방식을 다른 감각 양식으로 전환하는 것, 예를 들어 색깔을 소리로 듣고 소리를 시각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바우하우스가 100년 전에 실험한 이 개념이 오늘날 애플의 디자인 철학과 AI의 멀티모달(multimodal) 기술로 이어진다는 점이 저는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출처: 바우하우스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듯, 바우하우스는 미술·건축·공예·음악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Gesamtkunstwerk) 교육을 실천했습니다. 이 융합적 접근이 스티브 잡스가 "기술과 예술의 결혼"이라 표현한 애플의 정체성과 정확히 겹칩니다. 저는 이 연결 고리를 처음 파악했을 때, 편집사고가 단순한 공부 방법론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틀 자체임을 실감했습니다.
메타언어를 쌓는 것이 실전이다
일반적으로 공부를 잘하려면 많이 읽고 많이 외우면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것만으로는 자기 생각이 생기지 않습니다. 대학원 시절 저는 노트 필기를 열심히 했습니다. 양으로 치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미나 시간에 교수가 "네 생각은 뭐야?"라고 물으면, 저는 읽은 책의 내용을 재조합해 말하는 것 이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텔카스텐(Zettelkasten)이라는 개념을 뒤늦게 접했을 때 그 이유를 이해했습니다. 제텔카스텐이란 독일어로 '메모 상자'를 뜻하며, 카드 한 장에 하나의 아이디어를 담고 그 카드들을 네트워크처럼 연결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고 정리 방법입니다. 핵심은 카드에 저자의 말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내용을 왜 중요하다고 판단했는가'를 내 언어로 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메타언어(meta-language)입니다. 메타언어란 지식의 내용을 담는 언어가 아니라, 그 지식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한 차원 위의 언어를 말합니다.
저는 실제로 이 방식을 적용해봤는데, 처음 한 달은 솔직히 어색하고 느렸습니다. 책 한 챕터를 읽고 메타언어로 요약하는 데 노트 필기보다 세 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석 달이 지나자 달라졌습니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두 분야의 내용이 연결되는 순간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연결의 쾌감이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데이터를 축적하고 연결하는 도구로는 현재 옵시디안(Obsidian) 같은 개인 지식 관리 소프트웨어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도구들은 입력된 메모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네트워크 그래프로 시각화해 줍니다. 제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연결 고리들이 화면에 나타나는 걸 처음 봤을 때, 이 도구가 단순한 정리 앱이 아니라 시각적 사고(visual thinking)를 외부로 꺼내주는 장치임을 깨달았습니다. 시각적 사고란 언어 이전에 이미지와 패턴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인간 고유의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메타언어 훈련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한 방식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책이나 영상에서 인상 깊은 내용을 접하면, 그 내용 자체를 메모하기 전에 딱 한 줄을 먼저 씁니다. "내가 이걸 왜 중요하다고 느꼈지?" 그 답을 내 언어로 한 줄 적는 것입니다. 이 습관이 쌓이면 나만의 메타언어 체계가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창조성은 타고나는 건가요, 아니면 누구나 키울 수 있나요?
A. 창조성이 완전히 타고난다는 시각도 있지만, 인지심리학에서는 학습과 환경이 그 능력을 발현시킨다고 봅니다. 제 경험상 창조성은 재능보다 '어떻게 생각을 정리하고 연결하느냐'의 습관에 더 크게 달려 있었습니다. 편집사고 훈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Q. 메타언어 훈련을 어떻게 시작하면 되나요?
A. 복잡한 도구 없이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책이나 영상을 접한 뒤 "내가 이 내용을 왜 중요하다고 느꼈는가"를 한 줄로 적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익숙해지면 카드 한 장에 아이디어 하나씩 담는 제텔카스텐 방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Q. 교환가치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환경을 바꾸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써보니 공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익숙한 맥락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낯선 장소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가"라는 질문이 훨씬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일상 속 작은 공간 변화부터 시도해보시길 권합니다.
Q. 지식 정리 도구로 뭘 쓰는 게 좋나요?
A. 도구보다 습관이 먼저입니다. 초반에는 종이 카드나 단순한 메모 앱으로 충분합니다. 데이터가 어느 정도 쌓인 뒤에 옵시디안 같은 네트워크형 도구로 이전하면, 연결 고리들이 시각화되면서 편집사고가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결론
저는 오랫동안 창조적인 삶이란 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면성실하게 주어진 레일을 달리는 것이 최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차이를 직면하고, 편집사고라는 개념을 실제로 훈련하기 시작하면서 삶의 질감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모든 것이 바뀐 건 아닙니다. 하지만 메타언어를 쌓아가는 과정이 예전보다 훨씬 재미있어졌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지금 삶이 지루하거나 공허하다면, 재능이나 돈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남의 기준으로 자신의 사용가치를 평가해온 것일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책이나 본 영상에서 딱 한 줄만 내 언어로 적어보는 것, 그것이 메타언어 훈련의 첫걸음이자 창조적 삶의 시작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