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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아코디언 (결락의존재, 앵벌이공동체, 전후트라우마)

팝콘과 필름 2026. 7. 29. 10:44

목차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천명관 작가의 신작 『아코디언』을 읽으며 1950년대 앵벌이 아이들의 이야기가 낯설기는커녕, 어릴 때 시내 골목에서 봤던 어떤 얼굴들과 겹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풍경이었는데, 지금 와서 다시 들여다보니 그게 풍경이 아니라 지워진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명관 아코디언 (결락의존재, 앵벌이공동체, 전후트라우마)
    천명관 아코디언 (결락의존재, 앵벌이공동체, 전후트라우마)

    결락의 존재,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 골목이나 시내 중심가에는 신체적 결핍을 가진 분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습니다. 한쪽 다리를 다친 채 몸을 끌고 다니던 청소년,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며 손을 내밀던 아이들. 그게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얼굴들이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여기서 '결락의 존재'란 신체적·경제적 결핍으로 인해 사회의 주류 공간에서 배제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거리에 나서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실제로 사라진 건지, 아니면 우리 눈에 안 띄도록 어딘가로 옮겨진 건지, 저는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복지가 발전하면 이런 분들이 더 잘 보호받게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건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제도가 생기면서 이들은 시설 안으로 들어가거나 거리 밖으로 밀려난 경우가 많고, 사람들 마음속에는 오히려 '저런 분들과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는 감각이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천명관 작가가 인터뷰에서 표현한 '보이지 않는 격'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그 감각을 짚어낸다고 느꼈습니다.

    요약: 결락의 존재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보이지 않는 벽을 쳐서 시야 밖으로 밀어낸 것에 가깝습니다.

     

    앵벌이 공동체의 계급과 착취 구조

    『아코디언』을 읽으면서 제가 가장 놀란 건 아이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안에도 계급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착취당하는 최하층 아이들, 중간 관리자 역할의 깜상과 아미, 그 위에 군림하는 양목사. 이 구조는 어른 사회를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아이들이 배워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그 질서 안에 던져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착취 구조의 정점에 '목사'라는 신분이 있다는 점입니다. 양목 사는 아이들에게 '구름 타는 알약'이라 불리는 마약성 약물을 투여해 신체적 의존 상태를 만들고, 그 의존성을 통해 통제권을 유지했습니다. 이런 수법은 실제로 당시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고 합니다. 권위 있는 신분을 이용한 착취, 즉 사회적 신뢰를 무기로 삼은 범죄입니다.

    제가 이 대목을 읽으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이 구조가 70년 전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취약계층 아동을 대상으로 한 착취는 지금도 다른 형태로 반복됩니다. 아동복지법 위반 사례나 보호시설 내 인권침해 사건들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착취 구조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출처: 보건복지부).

    • 최하층 아이들: 실질적 노동과 구걸을 담당하며 약물에 종속된 상태
    • 중간 관리자(깜상·아미): 하층을 감시·통제하며 소규모 권력을 행사
    • 정점(양목사): 신분과 약물을 이용해 공동체 전체를 착취하는 구조의 설계자
    요약: 앵벌이 공동체는 어른 사회의 계급 구조를 그대로 복제한 축소판이었으며, 그 착취의 방식은 지금도 형태만 바꿔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후 트라우마, 끝나지 않은 전쟁의 자장

    전쟁이 끝났다는 명제가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천명관 작가가 던졌을 때 저도 멈칫했습니다. 우리는 명목상 정전 상태입니다. 종전(終戰)이 아닙니다. 1953년 7월 27일에 서명된 정전협정은 전쟁을 끝낸 게 아니라 잠시 멈춘 것입니다. 이 사실은 법적 개념이기 이전에 심리적 현실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전후 트라우마(post-war trauma)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개인과 사회가 겪는 심리적·사회적 상처의 총체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총성이 멈춰도 그 상처는 세대를 넘어 남는다는 것입니다. 분단이 고착화하면서 생긴 이념 갈등, 레드 콤플렉스 — 빨갱이에 대한 과도한 공포와 혐오 반응 — 이런 것들이 여전히 한국 사회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 그 증거입니다.

    천명관 작가는 역사적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는 건 학자의 일이고, 작가의 몫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개인의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 말에 크게 공감한 건,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 수치나 사건 중심이면 결국 남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네 살, 여덟 살, 한쪽 다리가 없는 열한 살 아이의 이야기로 들어올 때 비로소 그 시대가 몸으로 느껴집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연구에서도 숫자보다 개별 증언이 훨씬 강한 기억을 만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국방연구원).

    요약: 한국전쟁은 정전 상태일 뿐 종전이 아니며, 그 트라우마는 이념 갈등과 사회적 공포의 형태로 지금도 우리를 조건 짓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천명관 작가의 『아코디언』은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하나요?

    A.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합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1940년대생 앵벌이 아이들이며, 이들을 착취하는 어른 세대는 1930년대생입니다. 전쟁이 남긴 상처와 극빈 공동체의 생존 방식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Q. 요즘 사회에서 신체적 결핍을 가진 분들이 눈에 덜 띄는 이유가 뭔가요?

    A. 일반적으로 복지제도가 발전하면서 이분들이 더 잘 보호받게 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시설 수용이나 사회적 시선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진 측면도 큽니다. 제도가 사람을 거리에서 지워버리는 아이러니가 생긴 겁니다.

     

    Q. 아코디언이 소설 제목이 된 이유가 뭔가요?

    A. 아코디언은 정착하지 못한 유랑자의 악기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뿌리 내리지 못한 채 살아가야 했던 전후 시대 민중의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선택된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 결말에서 아코디언 연주는 모든 고통과 투쟁의 끝에 남은 것, 살아남은 것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Q. 전후 트라우마가 지금도 한국 사회에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나요?

    A.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현재도 법적으로 정전 상태이며 종전이 아닙니다. 이념 갈등, 레드 콤플렉스, 분단으로 고착된 사회 구조는 전후 트라우마가 세대를 넘어 전달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숫자로 집계된 역사보다 개인의 이야기가 이 상처를 더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결론

    제가 이 소설을 덮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건 거창한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시내에서 스쳐 지나쳤던 그 얼굴들, 그때 돈을 줘도 어차피 그 아이한테 안 간다며 무심히 지나쳤던 제 기억이었습니다. 그 말이 맞든 틀리든, 그게 나와 그 아이 사이에 쳐진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는 걸 이제야 느낍니다.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공감하는 태도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이 당위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 감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결락의 존재들이 거리로 나와 당당히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물리적 환경과 제도적 안전망이 먼저 갖춰져야, 그 공감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과거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무엇을 바꿀지 묻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6Udq6KNg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