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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때 "열심히 시도하라"는 삶의 드라이버에 완전히 올라타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부동산 공부, 외국어, 새로운 프로젝트... 늘 다음 도전을 쫓느라 소중한 친구의 카톡에 답장조차 며칠씩 미뤘습니다. 그러다 그 친구가 용기를 내 "나만 연락하는 것 같아서 좀 서운해"라고 말했을 때, 처음으로 제 방식을 돌아봤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겪는 서운함과 엇갈림의 뿌리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각자의 성격과 심리적 드라이버 차이에 있다는 것, 그때부터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친구를 가르는 기준, 친화성이란 무엇인가
심리학에서 성격을 분류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가 친화성(Agreeableness)입니다. 친화성이란 단순히 사교적이거나 친절한 태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핵심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입니다. 저 사람이 지금 뭘 필요로 하는지,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자연스럽게 감지하고 반응하는 능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친화성이 높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내가 말하기 전에 이미 배려받는 느낌이 납니다. 제 아내가 딱 그런 편인데, 밥을 먹을 때도 항상 다른 사람을 다 챙기고 나서야 본인 숟가락을 듭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몸이 움직입니다. 친화성이 그 사람의 기본 성향으로 자리 잡은 거죠.
반대로 친화성이 낮은 사람은 삶의 에너지 중심이 자기 자신에게 향해 있습니다. 만나면 본인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말이 먼저 나옵니다. 이게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데 친화성이 높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의식적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출처: 미국심리학회(APA)의 성격 연구에 따르면, 친화성은 빅파이브(Big Five) 성격 모델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대인관계의 질과 강한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 친화성이 높은 사람: 상대의 필요를 자연스럽게 감지, 배려에 에너지 소모가 적음
- 친화성이 낮은 사람: 배려를 위해 의식적 노력이 필요, 에너지 소모가 상대적으로 큼
- 친화성이 지나치게 높으면 자기 욕구를 잃는 부작용도 존재
연락 안 하는 친구를 이해하는 열쇠, 심리적 드라이버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 심리학에서 말하는 드라이버(Driver)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드라이버란 한 사람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행동을 이끄는 핵심 심리적 동기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이걸 할 때 내 인생이 가장 힘차게 굴러간다"는 내면의 엔진 같은 것입니다.
드라이버의 유형은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됩니다. 완벽해라, 남을 기쁘게 하라, 강해라, 열심히 시도하라, 서둘러라. 저는 솔직히 이 중에서 "열심히 시도하라" 드라이버가 굉장히 강했습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성과를 내는 것 자체에서 삶의 활력을 얻다 보니, 저녁이 되면 늘 지쳐서 쓰러졌고 친구 연락은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이 드라이버 관점에서 보면 "친한데 연락을 잘 안 하는 친구"의 패턴이 설명됩니다. 그 친구는 오늘도 새로운 자격증, 미라클 모닝, 운동 챌린지로 일정이 꽉 찬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계를 소홀히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열심히 시도하라는 드라이버가 워낙 강하게 작동하다 보니 친구가 서운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겁니다. 출처: Taibi Kahler의 드라이버 이론에서도 각 드라이버 유형별로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행동 패턴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남을 기쁘게 하라" 드라이버가 강한 사람은 주위의 소중한 몇몇에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쏟습니다. 그러다 돌아오는 게 없으면 현타가 오고, 직언 한 마디 하기도 어려워서 그냥 서서히 손절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제 친구가 저에게 서운함을 털어놓던 그 순간이 딱 그런 임계점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일방적인 관계에서 서운함을 표현하는 소통방식
제 친구가 그 말을 꺼냈을 때, 저는 처음에 좀 당황했습니다. 당연히 내가 바쁜 거 알지 않느냐는 생각이 먼저 올라왔거든요.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그 친구가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친구가 한두 번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혼자 감정을 삭여왔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 스스로 원칙을 하나 정했습니다. 그 친구가 두 번 연락하면 제가 무조건 한 번은 먼저 연락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기쁘게 하라" 드라이버가 높은 분들이 이런 상황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직언(直言)입니다. 직언이란 돌려 말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상대에게 직접 전달하는 소통 방식입니다. 이 드라이버가 강하면 "이 말을 했을 때 상대가 불편해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올라와서 표현 자체를 계속 미루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관계가 조용히 식어버립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솔직하게 마음을 꺼내는 것이 관계를 흔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다만 방식이 중요합니다. "넌 왜 연락을 안 해?" 같은 공격적 표현 대신 "너는 나한테 소중한 친구인데, 내가 일방적으로 연락할 때가 많아서 좀 서운할 때가 있어"처럼 감정의 주어를 자신에게 두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대화를 확장하는 질문 습관도 중요합니다. 상대의 말에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거 어디서 봤어?" 같은 연속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대화의 깊이와 온도가 달라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친화성이 낮은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나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친화성이 낮은 사람은 상대를 배려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뿐이고, 의식적인 노력으로 충분히 보완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제 경험상 친화성이 낮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친구가 친화성이 높아도 전혀 노력하지 않는 친구보다 훨씬 든든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Q. 나만 연락하는 일방적인 관계, 그냥 정리해야 할까요?
A. 정리 전에 먼저 내가 그 관계에 아직 애정이 있는지 들여다보는 게 순서입니다.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고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친구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열심히 시도하라" 드라이버가 강한 유형이라면 관계를 끊으려는 의도가 없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한 번 솔직하게 마음을 꺼내보는 시도를 먼저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Q. 심리적 드라이버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나요?
A. 드라이버(Driver)는 교류분석 심리학 이론에서 나온 개념으로, 자신이 언제 가장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지 돌아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에너지가 넘친다면 "열심히 시도하라", 누군가를 도왔을 때 가장 뿌듯하다면 "남을 기쁘게 하라" 드라이버가 강한 편입니다. 전문적인 진단은 교류분석 관련 심리 검사를 통해 받을 수 있습니다.
Q. 내향인인데 연락을 자주 못 하는 게 나쁜 친구라는 건가요?
A. 내향성(Introversion)이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에너지를 소모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회복하는 성향을 의미합니다. 내향인은 연락 자체에 쓰는 에너지 비용이 외향인보다 높기 때문에 빈도가 낮을 수 있습니다. 이는 관심 부족이 아니라 에너지 구조의 차이입니다. 다만 내향인이라도 소중한 관계에 대한 의식적인 최소한의 신호를 보내는 습관은 관계 유지에 중요합니다.
결론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서운함의 상당수는 상대가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친화성 수준과 심리적 드라이버가 달라서 생깁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서운함이 분노가 되기 전에 대화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관계를 지키는 첫 번째 조건은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물론 이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친화성이 낮다면 상대 입장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훈련을, 드라이버가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다면 반대 방향의 드라이버를 조금씩 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래 곁에 두고 싶은 관계라면, 그 정도의 의식적 조율은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