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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왜 저렇게 남 잘되는 꼴을 못 볼까"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지요. 저도 한때 그런 사람 곁에서 일했고, 그보다 더 오래는 거절을 못 해 스스로를 갈아 넣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라, 자존감이 왜곡되어 있어서 생기는 문제라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왜곡된 자존감, 나르시시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자존감 이야기를 꺼내면 대부분 "높다" 혹은 "낮다"로 나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세 번째 경우를 따로 구분합니다. 바로 나르시시즘(narcissism)입니다. 여기서 나르시시즘이란 단순히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우월감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실패까지 필요로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존감이 '낮은' 것이 아니라 '못생긴 것'이라는 표현이 꽤 정확하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봤는데, 나르시시즘이 있는 사람 옆에 있으면 아무리 잘해도 공기가 무겁습니다. 같은 팀이 함께 성과를 냈는데 "제가 그 멍청한 것들 데리고 해냈습니다"라고 말하는 식의 표현, 농담처럼 건네지만 실제로는 팀 전체를 깎아내리는 그 패턴이 전형적입니다. 이런 분들이랑 오래 일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제가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오더군요.
심리학자들은 이 나르시시즘이 어릴 때의 과도한 칭찬과 연결된다고 봅니다. 아이가 2층을 올라갔는데 10층짜리 칭찬을 반복적으로 받으면, 아이는 늘 10층의 인정만 칭찬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른바 '조건부 자존감(contingent self-esteem)'의 문제인데, 여기서 조건부 자존감이란 내가 남보다 나을 때만 자신을 가치 있다고 느끼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이 구조가 굳어지면 절대적인 성공만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고, 반드시 상대적인 우위까지 확인해야 안심이 됩니다.
석차 문화도 이 문제와 연결됩니다. "90점 받았어요"라는 아이에게 "몇 등이야?"를 바로 묻는 반응은,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 자체의 즐거움을 지우고 오직 순위에만 의미를 부여하도록 학습시킵니다. 아무리 연구를 찾아봐도 석차가 건전한 경쟁의식을 만든다는 근거는 없고, 오히려 왜곡된 비교 의식을 강화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나르시시스트는 다크 트라이어드(Dark Triad)의 한 축이기도 합니다. 다크 트라이어드란 심리학에서 나르시시즘·소시오패시·마키아벨리즘을 묶어 부르는 개념으로, 세 가지 모두 타인을 수단으로 보는 성향을 공유합니다. 주변에서 아주 작은 비판에도 극렬하게 반응하거나, 사소한 풍자에 즉각적으로 공격적으로 돌변하는 분들을 보면 이 다크 트라이어드의 기운이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자존감의 반대말은 낮은 자존감만이 아니라 나르시시즘도 포함된다
- 과도한 칭찬은 조건부 자존감을 만들어 상대적 우위에만 의존하게 만든다
- 석차 중심의 비교 문화는 과정의 즐거움을 지우고 왜곡된 경쟁 의식을 강화한다
- 나르시시스트는 작은 비판에도 극렬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거절 연습과 욕구 발견, 이 순서가 중요했습니다
저는 꽤 오랫동안 거절을 못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공감과 배려"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거절했을 때 상대가 실망하는 표정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모든 부탁이 제 쪽으로 쌓였고, 쌓인 일들은 결국 번아웃(burnout)으로 이어졌습니다. 번아웃이란 지속적인 스트레스 과부하로 인해 신체적·정서적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된 상태를 말하는데, 제 경우 그 원인을 한참 뒤에야 거절 실패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거절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성격의 문제, 즉 타고난 회피성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건 연습의 문제에 더 가까웠습니다. 야구 선수로 따지면, 1년에 네다섯 번밖에 오지 않는 방향의 타구를 굳이 따로 연습하는 선수가 에이급이 되는 것처럼, 거절도 미리 연습해두지 않으면 막상 그 순간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거울 앞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를 50번 넘게 연습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엔 민망했는데, 어느 순간 그 문장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거절보다 먼저 필요한 게 있었습니다. 바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 즉 자기 욕구 인식(self-awareness of needs)입니다. 여기서 자기 욕구 인식이란 타인의 기대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저는 퇴근길에 아무 생각 없이 동네 구립 도서관에 들어갔다가, 평소엔 절대 손대지 않던 원예 책 앞에서 멈칫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흙을 만지고 작은 화분에 씨앗을 심는 과정에서 이상할 정도로 안도감이 오는 것을, 그날 '얻어걸리듯' 발견했습니다.
그 이후로 거절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지금 제가 꼭 해야 할 개인 작업이 있어서 어렵습니다"라는 말이 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명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명확할수록 거절의 논리도 선명해진다는 걸,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배운 셈입니다.
그렇다고 거절이 단번에 쉬워지지는 않았습니다. 거절을 연습한다는 것이 결국 상대방과의 갈등 내성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직장 내 정신건강 지침에서도 자기 경계 설정(self-boundary setting)이 번아웃 예방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명시되어 있습니다(출처: World Health Organization). 거절이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기 경계를 지키는 건강한 행위라는 인식 자체가, 연습보다 먼저 필요한 전제 조건일 수 있습니다.
욕구 발견에 대해 "먼저 뭘 원하는지 파악하고 시작하라"는 조언을 드리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억지로 찾으려 하면 오히려 막막해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찾는 게 아니라 마주치는 것에 가깝습니다. 평소 가지 않던 상가, 강변, 도서관의 낯선 코너,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장르의 책. 이런 작고 사소한 접촉들을 늘릴 때 어느 날 "아, 나 이거 좋아하네"가 불쑥 나타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나르시시즘과 자신감이 높은 사람을 어떻게 구별하나요?
A. 가장 쉬운 방법은 주변 사람이 칭찬받을 때 그 사람의 반응을 보는 것입니다.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은 "우리 같이 잘됐네"라고 반응하는 반면,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람은 자신과 같은 좋은 일이 상대방에게도 생겼을 때 불편함이나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자신이 잘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상대가 잘 안 되어야 만족하는 구조가 핵심 차이입니다.
Q. 거절을 잘 못 하는 게 자존감 문제인가요, 아니면 성격인가요?
A. 둘 다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상당 부분 연습량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적으로 거절 경험 자체가 적은 환경에서 자란 경우, 막상 거절이 필요한 순간에 몸이 굳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거울 앞에서 거절 문장을 반복해보거나, 가까운 사람과의 가벼운 상황에서 먼저 연습해보는 것이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Q. 내가 뭘 원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을 때 어떻게 하면 되나요?
A. 억지로 찾으려 하면 오히려 더 막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와 다른 작은 경험들을 늘려나가는 것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안 가본 도서관 코너, 읽어본 적 없는 장르의 책 한 권, 다른 동네 골목 한 바퀴. 이런 작은 접촉들을 쌓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이거 꽤 좋아하네"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옵니다. 찾는 것이 아니라 마주치는 것입니다.
Q. 칭찬을 많이 해주는 게 좋은 양육 아닌가요?
A. 칭찬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칭찬의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남보다 잘했을 때, 혹은 결과가 완벽할 때만 칭찬하면 아이는 비교와 성과에만 의존하는 자존감을 형성하게 됩니다. "저번 달보다 이 부분이 많이 늘었네"처럼 본인의 과거와 비교한 성장을 짚어주는 칭찬이, 외부 비교 없이도 스스로를 가치 있다고 느끼는 내재적 자존감을 키웁니다.
결론
자존감은 높고 낮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왜곡된 방향으로 자란 자존감, 즉 나르시시즘은 오히려 주변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제가 번아웃을 반복하면서도 오래 못 알아챈 이유 중 하나가 이 왜곡의 구조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절을 연습하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소소한 경험들 속에서 발견해가는 과정이 저에게는 가장 실질적인 자존감 회복의 방법이었습니다. 거창한 자기 계발보다 동네 도서관에서 얻어걸린 원예 책 한 권이 더 많은 것을 바꿔줬습니다. 지금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면, 일단 평소와 다른 작은 공간에 한 번 들어가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찾으려 하지 않아도 마주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