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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육아를 시작한 첫 해, 저는 아이가 울 때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습니다. 매뉴얼 같은 건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때 우연히 접한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의 책 이야기가 그 답답함에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인생은 '안내서 없이 시작하는 여행'이라는 말 한 마디가 이상하게 위로가 됐거든요.

안내서 없이 던져진 삶, 히치하이킹처럼 시작된 육아
더글라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지구가 우주 고속도로 공사 명목으로 허무하게 파괴되면서 시작됩니다. 예고는 있었습니다. 다만 지구인들이 그 공고를 알아볼 방법이 없었을 뿐이었죠. 살아남은 지구인 한 명은 외계인 친구 덕분에 우주를 떠돌게 되고, 그 여정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찾아다닙니다.
제가 이 이야기에서 멈칫한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지구는 단순한 행성이 아닙니다. 삶의 의미라는 답(42라는 숫자)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그 답에 맞는 '질문'을 찾아내기 위해 설계된 거대한 컴퓨터 시스템이 바로 지구라는 설정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사랑하고 일하고 늙어가는 그 모든 과정이 계산의 한 단계라는 거죠.
저도 육아를 시작하면서 정답을 먼저 찾으려 했습니다. '안정형 애착(Secure Attachment)'이라는 개념을 붙들고 책을 뒤졌습니다. 여기서 안정형 애착이란, 아이가 양육자를 안전 기지로 인식하고 세상을 탐색할 수 있도록 형성되는 심리적 유대감을 말합니다. 이론은 알겠는데, 실제 육아 현장에서 그게 어떤 표정으로 나타나야 하는지는 아무도 안 가르쳐줬습니다. 정작 '질문'을 모르는 상태에서 답부터 외우고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택한 방법은 카메라였습니다. 틱톡에 아이와의 일상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제삼자 시각으로 저 자신을 관찰했습니다. 처음에는 성장 기록용이었는데, 영상 속 제 표정이나 말투를 보면서 '아, 나 지금 많이 지쳐 있었구나'를 알아챈 날도 있었습니다. 히치하이킹처럼,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일단 올라탄 덕분에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었습니다.
- 소설 속 지구의 역할: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찾는 거대한 계산 장치
- 답(42)은 이미 있지만, 질문이 정확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역설
- 원래 라디오 쇼로 시작해 BBC 드라마로도 제작된 작품 (출처: BBC 공식 페이지)
- 제목 네 단어 중 김대식 교수가 방점을 찍은 단어는 '안내서' — 인생은 안내서 없이 시작하는 여행이기 때문
내면의 언어, 우리는 같은 단어로 다른 세계를 말한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는 평범한 남자 레오폴드 블룸의 하루를 천 페이지 넘게 담은 소설입니다. 그런데 그 하루 동안 드라마틱한 사건은 거의 없습니다. 문을 열고, 길을 걷고, 사람을 만나는 것뿐입니다. 분량의 대부분은 그 동작 사이사이에 쉴 새 없이 흐르는 레오폴드의 잡생각들입니다.
이 기법을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머릿속에서 무질서하게 흘러 다니는 생각들을 검열 없이 그대로 문장으로 옮기는 서술 방식입니다. 문법도, 논리적 연결도 없습니다. 한 문장과 다음 문장이 이어지지 않는 건 그 사이에 전혀 다른 생각이 끼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소설 마지막 스무 장 정도를 차지하는 몰리 블룸의 독백은 점과 쉼표조차 없는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문학사에서 인간의 내면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한 챕터로 꼽힙니다.
김대식 교수는 이 소설을 수십 번 읽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이해가 안 돼서, 그다음엔 오기가 생겨서였다고요. 솔직히 이건 제가 예상하지 못한 독서 이유였습니다. '좋아서 여러 번 읽는다'는 건 익숙한 말인데, '이해 못 해서 여러 번 읽는다'는 건 완전히 다른 태도니까요.
교수의 설명 중 제게 가장 오래 남은 부분은 언어의 해상도(Resolution)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서 해상도란, 생각이라는 고화질 이미지를 언어라는 제한된 픽셀로 압축할 때 얼마나 많은 정보가 손실되는지를 나타내는 비유입니다. '빨간 사과'라고 말하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두 사람의 머릿속 빨간 사과는 다른 기억과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나 '자유' 같은 단어는 더 심각합니다. 같은 단어를 쓰면서 완전히 다른 것을 약속하고, 나중에 배신이라고 오해합니다. 처음부터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인데요.
제가 틱톡 영상을 통해 제 육아 방식을 다시 들여다봤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잘 돌보고 있다'는 제 인식과, 카메라에 찍힌 실제 제 표정 사이의 간극이 꽤 컸거든요. 제 안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밖에서는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영상이라는 외부 매개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했습니다.
예술의 의미, 잔인한 세상에서도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책입니다. 터키 작가인 파묵은 이 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출처: 노벨위원회), 배경은 16세기 오스만 제국 이스탄불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핵심 질문은 놀랍도록 현대적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잔인한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게 도덕적으로 허용되는가?"
소설 속에는 몽골 군대의 바그다드 침략을 탑 위에서 목격한 한 화가가 등장합니다. 아래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죽어가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찔러 실명합니다. 보지 않기 위해서요. 그리고 이후 아름다운 세계를 묘사하는 화가들을 살해하기 시작합니다. 잔인한 현실 앞에서 아름다움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죽은 자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논리였습니다.
이 질문을 육아와 연결해보니 생각지 못한 지점이 열렸습니다. 저도 육아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일상을 기록하는 게 괜찮은 건지 자주 의심했습니다. 지쳐 있으면서 웃는 영상을 찍는 게 어딘가 위선적인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파묵의 소설이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달랐습니다. 잔인함과 아름다움은 동시에 존재하고, 예술은 그 둘을 모두 담아낼 수 있을 때 진짜 의미를 가진다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김대식 교수가 이 책을 세 번이나 읽은 이유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습니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진다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 그건 질문의 무게가 그만큼 깊기 때문입니다. '예술의 역할'이라는 개념, 즉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현실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답을 끌어냅니다. 제가 육아의 한복판에서 그 질문을 만난 것처럼요.
자주 묻는 질문
Q.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어떤 순서로 읽어야 하나요?
A. 원작은 총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시리즈입니다. 국내에는 합본 형태로 출간되어 있어서 한 권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읽는다면 합본판으로 시작하되, 부담스럽다면 1권 분량인 앞 200페이지 정도만 읽어도 핵심 설정은 충분히 파악됩니다. SF보다는 철학적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책이라 장르 선입견 없이 접하는 게 좋습니다.
Q. 율리시즈는 너무 어렵다는데 꼭 처음부터 읽어야 하나요?
A. 저도 처음부터 읽으라고 권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수십 번 읽은 전문가도 영화 먼저 보고 나서야 이해했다고 할 정도로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마지막 스무 장 정도인 몰리 블룸의 독백 챕터만 읽어도 이 소설이 왜 문학사에서 중요한지 느낄 수 있습니다. 점과 쉼표 없이 이어지는 그 문장들이 생각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Q. 내 이름은 빨강은 역사 소설인가요, 추리 소설인가요?
A.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오스만 제국 궁정의 세밀화 화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구조입니다. 그 안에 예술의 윤리, 이슬람 문명과 유럽 문명의 충돌, 정체성의 문제가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역사 배경이 낯설다면, 오히려 그 낯섦 자체를 입문의 이유로 삼아도 좋습니다.
Q. 인생책을 여러 번 읽을 때 어떤 기준으로 다시 읽으면 좋을까요?
A. 제가 직접 써봤는데, '10년에 한 번' 주기가 꽤 유효했습니다. 10대에 읽었을 때와 30대에 읽었을 때 같은 문장에서 다른 것이 걸립니다. 그 차이가 자신이 그 10년 동안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억지로 다시 펼치기보다는, 살면서 어느 순간 '그 책이 생각난다'는 신호가 오면 그때 읽는 방법이 제 경험상 가장 잘 맞았습니다.
결론
세 권의 책을 하나로 묶는 실이 있다면, 저는 '정답보다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히치하이커는 삶의 질문을 찾는 과정이 곧 삶이라고 했고, 율리시즈는 우리가 같은 단어로 서로 다른 세계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으며, 내 이름은 빨강은 잔인한 현실과 아름다움이 공존할 수 있는가를 끝까지 물었습니다.
육아를 하면서 제가 배운 것도 결국 그 방향이었습니다. 완벽한 안내서를 기다리다가는 영영 시작할 수 없습니다. 서툰 채로 올라타고, 영상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해 안 되는 책을 몇 번이고 다시 펼치는 것, 그 과정이 곧 안내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관심이 생겼다면 세 권 중 가장 얇고 진입이 쉬운 히치하이커부터 한 번 집어드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