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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것 같은 감각이 찾아옵니다. 저도 그 감각을 꽤 오래 안고 살았습니다. 지금 한국은 청년부터 중년, 노년까지 전 세대가 조금씩 안으로 움츠러드는 시대입니다. 과연 혼자가 정말 편한 걸까요, 아니면 편하다고 믿고 싶은 걸까요?

고립은 왜 유행처럼 번지게 됐을까
요즘 '쉬었음 청년'이라는 말이 통계에 자주 등장합니다. 매달 70만 명 이상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 하죠. 그런데 저는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청년 문제로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직접 겪기 전까지는요.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 하루 일과가 아이 중심으로 재편되면, 밖과의 접점이 하나씩 끊깁니다. 처음엔 일부러 SNS를 줄였고, 그다음엔 모임 연락을 미루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쌓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제 반경이 집 안 몇 평으로 좁아진 걸 깨달았습니다. 고립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히 시작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사회적 위축(social withdrawal)'이라고 부릅니다. 사회적 위축이란 외부 자극이나 관계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두며 점차 고립 상태로 빠져드는 심리적 과정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대부분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사람을 만나면 피곤하고, 혼자 있으면 적어도 상처는 없으니까요.
2010년대 이후 소셜 미디어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비교의 공간이 무한정 넓어진 것도 이 흐름을 부추겼습니다. 화폐 경제 중심 사회에서 가치의 기준이 점점 돈 하나로 수렴되다 보니, 그 기준에 닿지 못했다고 느끼는 순간 밖으로 나갈 동력 자체가 사라집니다. 출처: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고독사는 전년 대비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으며, 50~60대 남성에 집중되던 양상이 최근에는 중년 여성과 20~30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관계가 행복에 미치는 진짜 영향
그렇다면 사람 사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혼자의 외로움이 낫다는 판단, 정말 맞는 걸까요? 저도 육아 초반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고립 상태가 길어지자 몸부터 반응했습니다. 낮에 졸리고, 밥맛이 없어지고, 작은 일에도 쉽게 지치더라고요.
행복 연구에서는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이라는 개념을 핵심 지표로 씁니다. 주관적 안녕감이란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와 긍정적 감정의 총합을 뜻합니다. 수만 명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결론을 내립니다. 이 지표를 유의미하게 높이는 유일한 필요조건은 풍성한 사회적 관계라는 것입니다.
돈과 행복의 관계도 흥미롭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한계효용 체감(diminishing marginal util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한계효용 체감이란 어떤 재화를 추가로 소비할수록 그로부터 얻는 만족감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입니다. 쉽게 말해, 돈이 아예 없을 때는 조금만 늘어도 삶이 크게 나아지지만, 어느 선을 넘으면 100을 더 투자해도 행복의 증가분은 2~3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지점에서는 '종목을 갈아타야 한다'는 표현이 꽤 적확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 종목이 바로 사람입니다.
의학적으로도 고립의 비용은 분명합니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면 면역 기능이 저하되어 감염성 질환에 취약해지고, 알코올 사용 장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잦습니다. 알코올 사용 장애란 음주 조절 능력이 손상되어 신체적·심리적 의존 상태가 되는 질환입니다. 혼자 마시기 시작한 맥주 한 캔이 자제를 권유하는 사람 없이 조금씩 늘어나는 구조, 저도 그 위험성을 이론이 아니라 주변에서 직접 목격했습니다. 출처: WHO 알코올 관련 보고에서도 사회적 고립과 알코올 남용의 상관관계는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건 '평가'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관계를 피하는 이유 중 큰 부분은 만날 때마다 평가받는 느낌 때문입니다. 심리학 실험에서 '사회적 평가 위협(social evaluative threat)'은 인간이 경험하는 스트레스 중 가장 즉각적으로 생리적 반응을 유발하는 자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적 평가 위협이란 타인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는 예상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 반응입니다. 칭찬조차 평가의 일종으로 느껴지는 사회에서는, 만남 자체가 피로의 원천이 됩니다.
- 고립 상태가 길어질수록 면역 기능 저하, 알코올 의존, 영양 불균형이 복합적으로 나타납니다.
- 돈은 결핍을 채우는 데 효과적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에서 행복의 증가분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평가받는 경험이 쌓이면 사람 자체를 회피하게 되는 악순환이 형성됩니다.
- 혼자 사는 것과 고립되어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삶의 풍요를 채우는 실전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 질문을 꽤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거창한 해결책을 찾다가 결국 찾은 답은 굉장히 단순했습니다. 그냥 나갔습니다. 아이 유모차를 끌고 동네 카페에 한 시간 앉아 있는 것부터요.
심리학에서는 '심리적 풍요로움(psychological richness)'이라는 개념이 최근 주목받고 있습니다. 심리적 풍요로움이란 행복이나 삶의 의미와는 별개로,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 그 자체가 삶의 질을 높인다는 개념입니다. 행복하지 않아도, 의미를 못 찾아도, 다양한 경험을 한 삶이 단조로운 삶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12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라는 후회가 가장 큰 나라가 한국이었다는 결과는 제가 직접 봤을 때 꽤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나가기 전의 불안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연습이 중요합니다. 제가 경험상 이건 좀 다른데, 모임 전날 밤에는 꼭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막상 두 시간 있다 돌아오면 생각보다 괜찮은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나가기 전의 예측값이 실제 경험보다 항상 나쁘게 설정되어 있는 것, 이걸 알고 나니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행복을 '큰 불행 없이 지내는 것'으로 정의하는 순간, 인생은 수비만 하는 축구 경기가 됩니다. 11명 전원이 골대 앞에서 실점을 막고 있는 팀이 왜 재미없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삶에 소소한 즐거움의 계기들, 이를테면 밟았을 때 기분 좋은 '압정' 같은 경험들이 얼마나 자주 깔려 있느냐가 행복의 빈도를 결정합니다.
제 경우 압정이 늘어난 건 크고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동네 작은 독서 모임에 나간 것, 아이와 처음 간 키즈 풀에서 웃었던 것, 오랫동안 연락 안 하던 친구에게 먼저 문자를 보낸 것,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방 안에서 고민만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혼자 사는 것도 고립인가요?
A. 혼자 사는 것 자체는 고립이 아닙니다. 1인 생활을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외부 활동을 유지한다면 건강한 독립입니다. 문제는 물리적 혼자가 아니라 관계 자체가 단절된 상태, 즉 누군가 며칠째 안 나타나도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입니다.
Q. 사람 만나는 게 스트레스인데, 억지로 나가야 하나요?
A. 영혼 없이 무조건 나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만나기 전의 불안'이 실제 만남보다 훨씬 크게 예측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부담 없는 작은 만남부터 시도해보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저도 처음엔 30분짜리 동네 산책 모임부터 시작했습니다.
Q. AI나 SNS로 외로움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요?
A. 단기적으로 감정을 환기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는 언어 기반으로 학습된 존재라 인간의 감정, 특히 비언어적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AI와의 관계가 실제 인간 관계를 대체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진짜 관계를 맺을 동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Q. 돈이 많으면 인간관계도 자연히 따라오지 않나요?
A. 결핍 수준의 빈곤에서는 돈이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추가 소득이 행복에 기여하는 폭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이를 한계효용 체감이라고 합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관계는 진짜 관계가 주는 행복감을 장기적으로 대체하지 못한다는 연구들이 일관되게 보여줍니다.
결론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배는 항구에 묶어둔 배라고 합니다. 하지만 배는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저도 한동안 안쪽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걸 선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나간다고 당장 행복해지지는 않았지만, 안에만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혼자가 편한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편함이 누적될수록 삶이 단조로워지고, 결국 주마등 앞에서 후회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면, 완벽한 관계를 찾으려 하기보다 아주 작은 한 걸음, 문 밖으로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 볼 만합니다. 생각보다 그렇게 어색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