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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제대로 못 자는 사람이 외롭고 불안해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속으로 "그러니까 제 얘기잖아요"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아기를 키우며 수면이 쪼개지고, 루틴이 무너지고, 내가 하루를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 자체가 사라져버린 그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통제감을 잃을 때 불안이 시작된다
스트레스의 심리학적 정의를 한 줄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통제권을 상실했을 때 느끼는 부정적 감정의 총합." 여기서 핵심은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통제권 상실'입니다. 같은 힘든 상황이라도 내가 어느 정도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느낄 때와 완전히 떠밀리고 있다고 느낄 때는 체감하는 스트레스 강도가 전혀 다릅니다.
제가 육아에 전념하던 시기가 딱 그랬습니다. 회사에서는 일의 순서를 제가 정하고, 우선순위를 제가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아기 앞에서는 모든 것이 아기 페이스입니다. 먹는 시간도, 자는 시간도, 심지어 제가 화장실 가는 타이밍조차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이 길어지자 사소한 일에도 과도하게 예민해지고, 이유 모를 무기력감이 찾아왔습니다. 당시에는 "내가 왜 이러지?"라고 자책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통제감 결핍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불안(Anxiety)이라는 감정은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가 아닙니다. 에너지는 존재하는데 어디로 써야 할지 몰라 요동치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불안이란 쉽게 말해 '방향을 잃은 긴장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불안한 상태에서 신체적 고통이나 외로움이 겹치면 그 고통이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뇌의 전측 대상회(ACC, Anterior Cingulate Cortex)라는 영역은 신체적 통증과 사회적 고통을 거의 같은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즉, 사람 때문에 상처받는 고통과 뼈가 부러지는 고통이 뇌 입장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출처: NIH PubMed, 사회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의 신경학적 중첩 연구).
그렇다면 불안을 무조건 없애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안이 없으면 움직임도 없습니다. 아기가 자는 30분 동안 제가 서둘러 밥을 먹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려고 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시간을 놓치면 오늘 내 시간은 없다"는 낮은 수준의 불안이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적응적 불안이라고 부릅니다. 적응적 불안이란 목표를 향해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기능적 긴장 상태를 말합니다. 문제는 이 불안의 강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때입니다.
제가 실제로 효과를 본 방법은 '크게 한 번'이 아닌 '작게 여러 번'이었습니다. 완벽한 휴식 한 번을 기다리는 대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10분, 짧은 스트레칭 5분처럼 작고 구체적인 행동을 하루에 여러 번 끼워 넣기 시작했습니다. 루틴(Routine)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루틴이란 특정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뇌가 '이건 해야 하는 일'로 인식하게 만드는 습관적 패턴입니다. 이 작은 루틴들이 쌓이자, 뇌가 "오늘도 어느 정도 제가 하루를 조율하고 있다"는 신호를 받기 시작했고, 그 자체로 불안이 줄었습니다.
- 스트레스의 핵심은 감정 자체가 아니라 '통제권 상실'이다
- 불안은 나쁜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었을 때 문제가 된다
- 100점짜리 행동 한 번보다 10점짜리 행동 열 번이 뇌에 더 효과적이다
- 작은 루틴이 통제감을 회복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나이 들수록 좋아지는 사람의 조건, 개방성
성격은 바꾸기 어렵다는 말에 "그러면 나쁜 사람은 평생 나쁜 사람이냐"라고 반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은 성격(Personality)과 성품(Character)을 다르게 봅니다. 성격이란 타고난 기질적 특성이고, 성품이란 그 성격의 장점을 삶 속에서 얼마나 잘 드러내느냐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으로 변하는 건 어렵지만, 내향성의 장점인 깊은 집중력과 세심한 관찰력을 타인을 배려하는 데 쓰면 그게 좋은 성품이 됩니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수록 성품이 좋아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무엇일까요? 외향성이나 성실성이 아닙니다. 심리학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변수는 개방성(Openness)입니다. 개방성이란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 심지어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기꺼이 마주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성격 요인들과 달리 개방성은 후천적으로도 어느 정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출처: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APA).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개방성을 높이려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하는데, 육아 중인 부모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는 조언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사람 대신 새로운 배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아기가 낮잠 자는 시간에 팟캐스트를 듣거나, 전에는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펼쳐보는 식으로요. 이런 작은 배움의 시도가 "내가 몰랐던 세계가 있구나"라는 감각을 유지시켜 줬습니다.
완벽주의(Perfectionism)에 대해서도 짚고 싶습니다. 완벽주의란 일을 완벽하게 해내려는 마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반드시 혼자 힘으로만 해결해야 한다는 고립된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육아를 하면서 이 완벽주의의 함정에 제가 자주 빠졌습니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를 "내가 못하는 것 같아 보인다"라고 느껴 혼자 버티다가 더 지치는 패턴이었습니다. 결국 작은 것부터 도움을 받아보기 시작했는데, 그러자 신기하게도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의 심리적 장벽이 낮아졌습니다. 기브 앤 테이크의 원리가 작동한 셈입니다.
<br "나이 들수록 개방성을 유지하거나 높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말에는 깊이 공감합니다. 다만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충분한 수면이 받쳐주지 않으면 개방성도, 성품도, 루틴도 모두 무너집니다. 수면 부족은 단순히 피곤함의 문제가 아닙니다. 잘 못 잔 다음 날은 같은 상황에서도 성격의 단점이 더 쉽게 드러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능력 자체가 떨어집니다. 수면이야말로 성품을 유지하는 가장 기초적인 인프라라는 생각이 지금은 확신에 가깝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육아 중 불안감이 심한데 이게 정상인가요?
A. 불안을 비정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심리학적으로는 불안이 전혀 없는 것이 오히려 더 문제입니다. 불안은 내가 그 상황을 중요하게 여기고 높은 기준을 갖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다만 일상생활이나 육아 자체를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속된다면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Q. 스트레스를 받을 때 혼자 감당하는 게 맞나요, 도움을 받는 게 맞나요?
A. "내 일은 내가 책임진다"는 독립심은 필요하지만, "혼자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완벽주의의 함정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작은 도움부터 받아보는 것이 결국 더 오래, 더 잘 버티게 해줬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책임을 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Q. 수면이 부족한데 성격이 예민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나요?
A.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수면 부족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장점보다 단점이 더 쉽게 드러나게 만드는 환경적 요인입니다. 오늘 유독 예민했다면, 어젯밤 수면 상태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자책보다 더 도움이 됩니다.
Q. 우울감과 우울증은 어떻게 다른가요?
A. 우울감은 일상에서 누구나 주기적으로 경험하는 에너지 저하 상태입니다. 반면 우울증은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 직장 출근, 학업, 기본적인 생활 유지처럼 일상적 기능 수행이 어려워지는 부적응 상태를 말합니다.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Q. 개방성을 높이려면 꼭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나요?
A.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개방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있는데, 저는 새로운 배움이나 경험으로도 충분히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분야의 책 한 권, 처음 도전하는 취미 하나도 "내가 몰랐던 세계"를 열어주는 계기가 됩니다. 중요한 건 늘 같은 패턴에만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
성격은 잘 안 변하지만 성품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 처음엔 위안처럼 들렸고, 나중엔 하나의 실천 지침이 됐습니다. 제가 육아 번아웃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작은 루틴을 만들고 충분한 수면을 우선순위에 올려놓는 작업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개인이 루틴을 만들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려는 노력은 분명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수면을 사치로 여기게 만드는 사회 구조, 육아 중인 개인이 통제감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 느슨한 관계를 쌓을 여유조차 없는 현실이 먼저 달라지지 않으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심리학이 알려주는 개인 전략이 빛을 발하려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