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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는데 너무 잘해주는 사람, 한 번쯤 만나보셨습니까? 제가 20대 때 딱 그런 사람을 만났습니다. 간과 쓸개라도 빼줄 것 같던 그 헌신이 사실은 정교한 덫이었다는 걸 한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이 패턴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먹잇감을 정밀하게 고른다
전화 사기범이 100통을 돌려도 실제로 걸려드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습니다. 그 몇 명이 우연히 걸린 게 아니라는 게 핵심입니다. 나르시시스트(자기애성 성격 장애,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는 자기 먹잇감을 꽤 치밀하게 고릅니다. 여기서 나르시시스트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현저히 낮고,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성취와 욕구를 위한 도구로 소비하는 성격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자기가 주연이고 타인은 전부 조연이라고 내면 깊이 믿는 사람입니다.
제가 겪은 그 사람도 처음부터 저를 '선택'했던 거라는 생각이 지금도 듭니다. 당시 저는 경계심이 거의 없었고, 누군가 잘 대해주면 그냥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버리는 편이었습니다. 범죄심리학자 헤이즐 우드(Hazel Wood) 등의 연구에 따르면, 현대의 극단적 살인 범죄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는 성격 유형으로 사이코패스보다 오히려 나르시시스트가 지목되는 추세입니다. 공감 능력의 결여가 그만큼 치명적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그때 제 자신이 '어수룩했다'라고 표현합니다. 착하다는 개념과는 다릅니다. 어수룩하다는 것은 타인의 감언이설에 쉽게 꼬임을 당할 수 있는 특성을 말합니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읽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르시시스트는 그 허점을 본능적으로 감지합니다.
- 나르시시스트는 처음에 과도한 호의로 상대를 무장해제시킵니다.
- 경계심이 낮고 타인을 쉽게 믿는 사람일수록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헤이즐 우드 등 범죄심리학 연구자들은 나르시시스트를 현대 극단 범죄의 핵심 성격 유형으로 지목합니다.
먹잇감이 되는 패턴, 제가 직접 겪어봤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좋았습니다. 제 모든 일정을 맞춰주고, 작은 불편도 먼저 알아서 해결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사람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과함'이 이미 신호였습니다.
경고음은 생각보다 빨리 울렸습니다. 제가 그의 뜻과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하면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습니다. 처음엔 말로 시작됐습니다. 언어적 폭력, 즉 말을 무기로 쓰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언어적 폭력이란 욕설이나 폭언뿐 아니라 상대를 지속적으로 비하하거나 죄책감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심리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저에게는 그토록 친절했던 사람이 식당 직원이나 자신보다 '약자'라고 판단한 상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갑질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위화감이 들었지만, 저는 '나한테 잘해주니까 괜찮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그게 오판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심리 구조를 연구한 학자들은 우리 사회에 내재된 '모멸감'의 문제를 오래전부터 지적해 왔습니다. 모멸감이란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거나 존재 가치를 부정당할 때 발생하는 강렬한 감정입니다. 이 감정이 내면에 쌓인 사람일수록, 조금의 거절도 극단적인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관계를 끊으려 했을 때 돌아온 반응이 정확히 그 패턴이었습니다. 집착과 협박, 그리고 "내가 이렇게 해줬는데"라는 분노의 폭발.
애착장애가 교제폭력으로 이어지는 구조
교제 살인이나 데이트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심리 기저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릴 때 주양육자, 대개는 어머니로부터 거부당하거나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했던 경험입니다. 이것이 애착장애(Attachment Disorder)로 이어집니다. 애착장애란 유아기 때 안정적인 정서적 유대가 형성되지 못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대인관계에서 병적인 집착이나 회피 패턴을 반복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연애를 시작할 때 전력투구합니다. 상대가 자신을 선택하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습니다. 그리고 막상 상대가 떠나려 하면, 과거의 거부당했던 기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납니다. "내가 이렇게 다 줬는데"라는 분노는 실제로는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순간부터 "내가 갖지 못하면 파괴하겠다"는 심리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것도 이 구조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차라리 내가 죽겠다"는 말부터 시작됐습니다. 이 말이 실제로는 협박의 언어라는 것,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범죄심리학에서는 이 단계를 경고 신호로 봅니다. 출처: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 피해 경험자의 상당수가 관계를 종료하려는 시점에 가장 극심한 폭력에 노출된다고 보고됩니다. 이별을 통보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뜻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처음부터 너무 잘해주는 사람이 다 나르시시스트인가요?
A.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성격이 세심하거나 상대에게 잘 맞춰주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다만 저는 '과함의 정도'와 '뜻이 안 맞을 때의 반응'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표정이나 말투가 급격히 달라진다면, 그건 좀 더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애착장애가 있으면 다 교제폭력을 저지르나요?
A. 그렇지는 않습니다. 애착장애를 가진 사람 모두가 폭력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적절한 치료나 관계 훈련 없이 방치될 경우 위험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애착장애 자체를 낙인화하기보다, 조기 개입과 심리 지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사람 보는 눈을 키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뭔가요?
A. 정답이 하나로 고정돼 있지 않다는 게 솔직한 답입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처세술 강의보다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 작품이 훨씬 더 오래 남았습니다. 인간의 다양한 면을 간접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사람들과 실제로 부딪히는 경험을 쌓는 것이 결국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은둔형 외톨이가 무조건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지 않나요?
A. 맞습니다. 은둔형 외톨이 전부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이상동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상당수가 장기 고립 상태였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립 자체가 범죄의 원인이라기보다, 소통 단절로 왜곡된 사고방식이 교정되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긴다는 시각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결론
제가 20대에 겪은 그 경험은 단순한 나쁜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나르시시스트적 성향과 애착장애가 결합된 사람이 어수룩한 상대를 어떻게 공략하는지, 교과서처럼 정확하게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그때의 저는 독서도 부족했고, 사람을 읽는 경험도 얕았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문학을 읽고 다양한 사람과 부딪힌 시간에서 비롯됐다고 확신합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을 개인의 역량 문제로만 환원하면 안 됩니다. 교제폭력과 이상동기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 심리치료 지원, 고립 청년 발굴 시스템이 제도로 뒷받침돼야 합니다. 개인이 사람 보는 눈을 기르는 노력과, 국가가 구조적 안전망을 만드는 노력. 이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