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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내내 "성격은 타고나는 거야, 사람은 안 변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습니다. 소심하고 내향적인 제 모습이 눈에 띌 때마다 '평생 이렇게 살겠구나' 하고 스스로를 벽 안에 가둬버리곤 했는데, 인지심리학의 핵심 개념인 기질(temperament)과 성품(character)의 차이를 제대로 알고 나서야 비로소 그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질은 바꾸기 어렵다, 하지만 성품은 다르다
솔직히 처음 이 구분을 접했을 때는 '그게 그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성격이나 성품이나 결국 같은 말 아닌가 하고요. 그런데 직접 공부해 보니 이 두 단어는 완전히 다른 층위의 개념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 기질(temperament)이란 태어날 때부터, 혹은 출생 초기에 이미 형성되어 잘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성향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타고난 성격의 뼈대 같은 것입니다. 반면 성품(character)은 그 기질의 장점을 얼마나 잘 드러내며 사느냐에 따라 평생에 걸쳐 달라질 수 있는 후천적인 결과물입니다.
심리학자들이 오랜 연구 끝에 정리한 인간 성격의 큰 축은 '빅파이브(Big Five)'라고 불리는 다섯 가지 요인입니다. 여기서 빅파이브란 외향성, 개방성, 신경증(예민함), 우호성, 성실성 다섯 가지 차원으로 한 사람의 기질을 설명하는 이론 체계입니다. 최근에는 캐나다 캘거리 대학교의 이규범 교수 연구팀을 중심으로 정직·겸손 차원을 추가한 '헥사코(HEXACO)' 모델이 더 정교하게 성격을 설명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쌓이고 있습니다(출처: HEXACO Personality Inventory 공식 사이트).
제가 이 사실에서 가장 크게 위안을 받은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성격이 나쁜 사람"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실상 틀렸다는 겁니다. 어떤 기질이든 그 장점을 살리면 좋은 성품이 되고, 단점만 내보이면 "저 사람 미성숙하네"라는 평가를 받을 뿐이라는 것. 그 말을 듣고 나서 저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자책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 빅파이브(Big Five): 외향성·개방성·신경증·우호성·성실성 — 타고난 기질의 다섯 축
- 헥사코(HEXACO): 빅파이브에 정직·겸손을 추가한 여섯 번째 차원
- 성품: 기질의 장점을 드러내며 후천적으로 빚어지는 것 — 얼마든지 성장 가능
수면이 성품을 결정한다는 말,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기질과 성품의 차이를 이해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장점을 잘 드러내려면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지?" 답이 의외였습니다. 바로 수면(sleep)이었습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성품이나 성격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잠 얘기가 나온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제가 직접 기록해보니 정말이었습니다. 전날 밤 6시간도 못 잔 날에는 작은 일에도 짜증이 먼저 튀어나왔고, 7~8시간 충분히 잔 날에는 같은 상황에서 훨씬 여유 있게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닙니다. 수면 중에 뇌는 낮 동안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고, 기억을 재정비하며, 깨어 있을 때와는 다른 방향의 신경 연결을 만들어냅니다. 이 과정을 수면 중 뇌 가소성(sleep-dependent neuroplasticity)이라 부르는데, 쉽게 말해 자는 동안 뇌가 스스로 업그레이드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수면의학 분야의 권위 있는 연구기관인 미국수면재단(National Sleep Foundation)은 성인에게 하루 7~9시간의 수면을 권고하고 있으며,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 감정 조절 능력과 판단력을 심각하게 저하시킨다고 발표했습니다(출처: National Sleep Foundation).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잠을 줄여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이 미덕처럼 통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 제가 가장 자주 실수하고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잘 자고 나서 컨디션이 좋은 날, 저도 모르게 더 배려 깊고 침착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성격이 바뀐 게 아니라, 성격의 좋은 면이 비로소 나올 환경이 갖춰진 것이었습니다.
나이 들수록 좋아지는 사람들의 공통점 — 개방성
주변을 돌아보면 나이가 들수록 더 고집스럽고 완고해지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70, 80이 되어서도 고민이 생기면 찾아가고 싶고 대화하고 싶어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차이가 그냥 타고난 성격의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아니었습니다.
심리학 연구들을 살펴보면, 나이 들수록 사람이 성숙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외향성도, 성실성도 아닌 개방성(openness)이었습니다. 여기서 개방성이란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 심지어 내 오류를 지적하는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기꺼이 마주할 수 있는 성향을 말합니다. 중요한 점은 개방성이 빅파이브 요인들 중에서 후천적인 변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큰 차원이라는 겁니다.
개방성을 높이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늘 같은 사람만 만나지 않는 것. 강한 구속력은 없더라도 느슨하고 다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자리에 자신을 데려다 놓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저도 몇 년 전부터 관심 있던 분야의 소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만난 연령대도 직업도 전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가 제 사고방식을 조금씩 넓혀주었습니다. 그전에는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불편하게 여겼는데, 그 불편함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습니다.
헥사코(HEXACO) 모델이 강조하는 정직·겸손 차원도 이 개방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겸손함, 그리고 틀렸을 때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정직함이 갖춰질 때,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해갑니다. 제 경험상 이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자극과 관계가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어주더라고요.
자주 묻는 질문
Q. MBTI가 성격 검사가 아니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A. MBTI는 잘못 만들어진 검사가 아니라 오남용되고 있는 검사에 가깝습니다. 같은 사람도 시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는, MBTI가 고정된 기질이 아니라 최근 2~3년간의 사회적 태도나 역할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MBTI를 볼 때도 "지금 내가 어떤 얼굴로 사회를 대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용도로만 참고합니다.
Q. 성격 검사로 더 정확한 것이 있나요?
A. 빅파이브(Big Five)에 정직·겸손 차원을 추가한 헥사코(HEXACO) 검사가 심리학계에서 더 신뢰도 높은 검사로 평가받습니다. 타고난 기질적 성향을 여섯 가지 차원으로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서, 단순히 유형을 분류하는 것보다 훨씬 실용적입니다. 직접 해보니 결과가 꽤 날카롭게 느껴지더라고요.
Q. 성실성이 낮게 나오면 게으른 사람이라는 뜻인가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격 연구에서 성실성(conscientiousness)은 '재미없는 일도 꾸준히 해내는 능력'과 연결된 차원입니다. 자기에게 잘 맞는 일에 몰입하는 능력은 성실성 검사로 잘 포착되지 않기 때문에, 자기 분야에서 대가로 불리는 사람들 중에도 성실성 수치가 낮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저 역시 이 대목에서 꽤 위안을 받았습니다.
Q. 단점을 고치려는 노력은 아예 의미가 없나요?
A.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지만, 심리학 연구들을 보면 장점을 갈고닦는 편이 훨씬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내 단점을 채우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나와 다른 강점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하는 방식이 개인과 조직 모두에 더 현실적인 전략으로 보입니다.
결론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타고난 기질, 즉 신경증적 성향이나 외향성·내향성 같은 부분은 억지로 바꾸려 해도 효과가 크지 않습니다. 반면 그 기질 위에 어떤 성품을 쌓느냐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다 지치는 것이 가장 소모적인 일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가장 아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요즘은 자주 듭니다.
당장 거창한 변화를 시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밤 한 시간 더 일찍 자는 것, 그리고 평소 만나지 않던 새로운 사람이나 분야에 조금 더 마음을 열어두는 것. 제가 직접 해보니 이 작은 습관들이 쌓였을 때, 어느 날 문득 예전과는 다른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개방성과 정직·겸손을 갖춘 성품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같은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