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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보는 눈 (편 가르기, 화합, 거리 두기)

팝콘과 필름 2026. 8. 13. 11:09

목차


    솔직히 저는 꽤 오랫동안 사람을 줄 세우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은 가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조용히 쳐내는 방식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돌아보니 제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이 너무 적었습니다. 타인을 내 기준으로 저울질하는 습관이 결국 저를 좁은 세상 안에 가둬놓고 있었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사람 보는 눈 (편 가르기, 화합, 거리 두기)
    사람 보는 눈 (편 가르기, 화합, 거리 두기)

    사람을 0점 아니면 100점 편 가르기로  봤던 시절

    돌이켜 보면 저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대화가 잘 통하면 금방 마음을 열었고, 가치관이 조금 다르다 싶으면 속으로 거리를 뒀습니다.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 딱 두 가지였습니다. 98점짜리나 47점짜리 같은 중간은 제 머릿속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나니 제 인간관계는 굉장히 단조로워져 있었습니다. 비슷한 성향의 소수와만 어울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이미 제 마음속에서 탈락한 상태였습니다. 숲에서 굵은 소나무만 남기고 가시나무, 잡풀, 돌, 벌레를 죄다 치워버리면 더 이상 숲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처럼, 저도 세상에서 제 마음에 드는 사람만 골라내다가 결국 삭막한 공간만 남겨놓은 셈이었습니다.

    이분법적 인간 평가, 즉 타인을 오직 두 가지 범주로만 나누는 사고 패턴은 심리학에서 흑백 사고(Black-and-White Thinking)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흑백 사고란 현실의 복잡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무시하고 극단적인 두 가지 결론만 허용하는 인지 왜곡을 의미합니다. 미국 심리학회(APA)는 이 패턴이 관계의 질을 낮추고 사회적 고립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합니다(출처: 미국 심리학회 APA).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흑백 사고는 처음엔 나를 보호하는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집니다. 에너지를 아끼고 상처받을 확률을 줄이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얼마나 얕은 착각이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 비슷한 사람만 남아 시야가 좁아진다
    •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게 된다
    • 정작 나 자신도 남의 흑백 기준에 걸려 탈락할 수 있다는 걸 잊는다
    요약: 사람을 0 아니면 100으로만 보는 흑백 사고는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함정이 된다.

     

    화합이란 같은 색깔이 되는 게 아니다

    불교에서 가장 첫 번째 덕목으로 꼽는 것이 화합입니다. 그런데 제가 오해하고 있었던 게 있었습니다. 화합이란 모두가 같은 의견을 갖게 되는 것, 즉 의견 통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거든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불교의 화합 개념은 화쟁(和諍)이라는 원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화쟁이란 서로 다른 견해들이 충돌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모양도 색깔도 크기도 제각각인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온전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불교학자들은 이 화쟁 사상이 원효 대사가 체계화한 핵심 철학이라고 설명합니다(출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실제로 불교 공동체인 승가(僧伽)에서는 만장일치 방식으로 의사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만장일치라고 하면 강압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반대하는 이도 자신의 의견을 잠시 내려놓고 전체의 흐름을 따를 수 있을 때까지 대화를 이어가는 방식입니다. 강요가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누군가와 의견이 충돌하면 빨리 결론을 내려버리고 싶어서 상대를 설득하려 하거나, 아니면 그냥 그 사람을 통째로 포기해 버리는 방식을 택해왔습니다. 그런데 화쟁의 태도처럼 '저 사람의 견해가 내 것과 다르지만, 저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이해해 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더니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언행보다 견해를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쓰는 말투나 행동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하는 건 조각 하나를 보고 그림 전체를 판단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가치 아래 살아가는지를 먼저 이해하면 언행의 이유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요약: 진정한 화합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 그대로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거리 두기는 도망이 아니라 지혜다

    인간관계가 힘들면 참고 견뎌야 한다는 생각, 저도 오래 갖고 있었습니다. 뭔가 공부하고 수련하면 불편한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고요.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불교에서는 팔고(八苦), 즉 인간이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여덟 가지 괴로움을 이야기합니다. 팔고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네 가지 기본 고통에 더해,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고통(애별리고, 愛別離苦), 싫어하는 것과 만나야 하는 고통(원증회고, 怨憎會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구부득고, 求不得苦), 그리고 생각이 만들어내는 고통(오음성고, 五陰盛苦)을 합친 개념입니다. 이 여덟 가지는 수행자도, 평범한 직장인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옵니다.

    원증회고가 특히 와닿았습니다. 싫어하는 사람과 계속 마주쳐야 하는 상황, 이건 제가 부족해서도, 제가 어리석어서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냥 삶의 구조 자체가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책이 줄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불편함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답이 '참기'가 아니라 '거리 두기'였거든요. 불편한 관계라면 최선을 다해 거리를 두는 것, 이것이 비겁함이 아니라 지혜로운 선택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직장 상사, 가족이 그렇죠. 그럴 때는 쫓아가서 화풀이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그건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뿐입니다.

    제 경우엔 거리를 두는 연습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가까운 관계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모든 관계를 유지하려고 억지로 힘을 쏟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니, 정말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 더 여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요약: 불편한 관계에서 거리를 두는 것은 도피가 아니라, 삶을 더 풍요롭게 가꾸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람을 평가하는 버릇을 어떻게 고칠 수 있나요?

    A. 제가 써봤더니 가장 효과적인 건 '이 사람의 언행'보다 '이 사람의 견해'를 먼저 이해하려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어떤 가치관에서 나온 행동인지를 먼저 생각해보면 단순한 호불호 평가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됩니다. 흑백 사고(Black-and-White Thinking)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판단을 잠시 보류하는 작은 훈련에서 시작됩니다.

     

    Q. 불편한 사람과 계속 일해야 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불교에서 말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즉 싫어하는 대상과 만나야 하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삶의 조건입니다. 제 경우엔 '이건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원래 세상이 이렇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자책이 줄었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의 접촉으로 에너지를 아끼고, 나머지 좋은 관계에 더 집중하는 쪽이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Q. 화합하려면 내 의견을 계속 양보해야 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화쟁(和諍) 사상에서 말하는 화합은 내 의견을 지워버리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이 각자의 자리에서 공존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내 생각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때 만장일치가 가능해지는 것이지, 강제로 같아지는 것이 화합은 아닙니다.

     

    Q. 관계를 끊는 것과 거리 두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A. 관계를 끊는 건 상대에 대한 흑백 판단, 즉 '저 사람은 0점'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반면 거리 두기는 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으면서도 나에게 필요한 심리적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제 경험상 거리 두기는 관계를 닫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결론

    제가 사람 평가를 좋아했던 시절을 돌아보면, 그건 세상을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내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게으름이었습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눠놓으면 생각할 게 줄어드니까요. 그런데 그 편함이 결국 고립이었습니다.

    산이 굵은 소나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듯, 우리 주변의 관계도 마음에 드는 사람만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가시나무가 있고, 이끼가 있고, 벌레가 있어야 산입니다. 화합, 화쟁, 팔고, 원증회고 같은 개념들이 결국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타인을 내 기준으로 재단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불편한 관계는 지혜롭게 거리를 두되, 좋은 관계는 더 단단히 붙들어두는 것, 그게 제가 배운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WvEcoCJvn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