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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꽤 오랫동안 사람을 점수로 매겨왔습니다. 0점 아니면 100점, 딱 그 두 가지로요.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날 주변에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제야 제가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인간관계에서의 저울질이 결국 나 자신을 고립시킨다는 사실, 그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저울질이 만드는 함정
제가 직접 겪어보니, 사람을 평가하는 습관은 처음엔 꽤 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 사람은 신뢰할 만해", "저 사람은 아니야"라는 판단이 나를 보호해 준다고 믿었거든요. 첫인상에서 말투, 직업, 심지어 짧은 대화 중 실수 하나까지 저만의 엄격한 기준으로 재단하며 빠르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문제는 그 결론이 거의 언제나 이분법(二分法)이었다는 겁니다. 이분법이란 모든 것을 두 가지 범주로만 나누는 사고방식으로, 쉽게 말해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이라는 틀에 타인을 욱여넣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을 쳐내고 벽을 세울수록 제 주변에 남은 건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아무도 없었습니다. 적막한 공간만 남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타인에게만 그토록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정작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단점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라고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귀인 오류(Attribution Error)라고 부릅니다. 귀인 오류란 타인의 행동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본성 탓으로 돌리고, 상황적 요인은 무시하는 인지적 편향을 말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누군가 실수를 하면 "저 사람은 원래 저래"라고 단정했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맥락을 고려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 따르면, 이런 편향은 인간관계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산에는 굵은 소나무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가시나무도 있고, 이끼도 있고, 벌레도 있어야 비로소 산이 됩니다. 벌레가 징그럽다고, 이끼가 미끄럽다고 다 빼버리면 그건 더 이상 산이 아니에요.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걸, 저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솎아낼수록, 정작 제가 서 있는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던 거죠.
- 이분법적 사고: 타인을 '좋은 사람/나쁜 사람'으로만 분류하면 관계의 폭이 급격히 좁아집니다.
- 귀인 오류: 상대의 행동을 상황이 아닌 성격 탓으로 돌리는 순간, 오해가 시작됩니다.
- 자기 고립: 타인에게 엄격할수록 결국 주변에 남는 사람이 없어지고, 스스로 고립됩니다.
- 불완전함의 수용: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0점짜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화합과 무아, 잣대를 내려놓을 때 열리는 것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타인의 단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단순히 '저 사람을 용서해 주는 행위'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건 오히려 나 자신을 풀어주는 일이었습니다. 남에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던 사람일수록 스스로에게도 똑같은 칼날을 대고 있거든요. 그러니 항상 피곤하고, 항상 긴장되어 있고, 사소한 것에도 쉽게 화가 납니다.
불교에서는 이 상태를 무아(無我)의 반대 개념, 즉 '아집(我執)'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아집이란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다는 집착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내 기준과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상태입니다. 이 아집이 강할수록 타인을 내 틀 안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고, 맞지 않으면 배제해 버립니다. 결국 관계가 망가지는 건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잣대가 너무 단단하게 굳어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무아(無我)는 고정된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불교의 핵심 개념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것을 담느냐에 따라 이름이 바뀌는 그릇과 같습니다. 보석을 담으면 보석함이 되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됩니다. 그릇의 크기보다 거기에 무엇을 담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뜻이죠. 제가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한동안 멍하게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내 그릇의 크기를 자랑하면서, 정작 그 안에 뭘 채우고 있는지는 전혀 들여다보지 않았던 겁니다.
화합(和合)에 대한 시각도 바뀌었습니다. 화합이란 모두가 같은 의견, 같은 색깔이 되는 게 아닙니다.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의 몸을 이루는 것, 그게 진짜 화합입니다. 만장일치가 '내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잠깐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에서 나온다는 것도, 제가 직접 관계를 망가뜨려 보고 나서야 겨우 이해했습니다. 출처: NIH(미국 국립보건원)의 연구에서도 타인에 대한 수용성이 높을수록 주관적 행복감과 사회적 연결감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확인된 바 있습니다.
잣대를 내려놓기 시작하면서 제 주변에 사람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엔 '저 사람은 왜 저 절에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날 저한테 꼭 필요한 말을 건네더라고요. 개똥도 약으로 쓸 데가 있다는 말, 직접 겪어보니 그게 정말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람을 평가하는 습관,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나요?
A. 제가 직접 써봤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 사람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바로 판단하는 대신, 상황적 맥락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분법적 평가가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시간이 걸리지만, 반복하다 보면 분명히 달라집니다.
Q. 불편한 사람과 억지로 잘 지내야 하나요?
A. 억지로 잘 지낼 필요는 없습니다. 불교에서도 불편한 사람에게는 지혜롭게 거리를 두는 것이 비겁한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거리를 둔다'는 것과 '낙인을 찍는다'는 것은 다릅니다.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나와 맞지 않는 것뿐이라는 인식의 차이가 중요합니다.
Q. 화합이 의견 통일과 다르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A. 화합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갖는 상태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색깔과 모양을 유지하면서도 함께 하나의 몸을 이루는 것이 화합입니다. 내 의견과 다른 선택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과정을 존중하며 따를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진짜 화합이 가능합니다.
Q. 무아(無我)가 실생활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A. 무아란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으로, 실생활에서는 내 기준과 판단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태도로 연결됩니다. 무아의 관점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면, 타인을 내 틀에 욱여넣으려는 충동이 줄고 관계가 한결 가벼워집니다. 거창한 수행이 아니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결론
정리하면, 사람을 저울질하는 습관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을 먼저 고립시킵니다. 제 경험상 그 사실을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겪는 것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주변이 텅 비고 나서야 비로소 제가 얼마나 좁은 틀로 세상을 보고 있었는지 실감했습니다.
아집을 내려놓는 것, 무아의 관점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화합이 의견 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제가 인간관계에서 배운 가장 실용적인 태도였습니다. 오늘 당장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누군가를 판단하려는 충동이 올라올 때, '이 사람이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 하나만 먼저 던져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