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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적으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1.4명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 1.4명 안에 가족이 들어가지 못하는 집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저는 한동안 남의 일처럼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도 그 통계 안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관계의 온도 — 부모를 '사람'으로 보지 못했던 시절
독립하고 나서 몇 년간, 저는 부모님과의 거리를 '성숙함'이라고 착각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 통 드리는 걸 미루고, 명절에 얼굴 비추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뻔뻔한 자기 합리화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주말 오후, 예고 없이 들른 부모님 댁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했습니다.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조용히 넘기고 계셨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아무 말 없이 설거지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 뒷모습에서 제가 본 건 '부모님'이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두 노인의 오후였습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부모님은 줄곧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달라진 건 제 시선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부모님을 역할(役割)로만 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역할이란 말 그대로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밥을 차려주는 사람, 용돈을 주는 사람, 걱정해 주는 사람. 그런데 부모님은 역할 이전에 감정이 있고 외로움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탈개인화(Depersonalization)'의 역방향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탈개인화란 특정 대상을 개별 인격이 아닌 집단이나 기능으로만 인식하는 심리 경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오히려 가장 납작하게 보는 역설입니다. 제가 정확히 그랬습니다.
- 부모를 '부모라는 역할'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볼 것
- 서운한 눈빛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는 감각을 회복할 것
- 가까울수록 더 쉽게 생기는 탈개인화를 의식적으로 경계할 것
심리적 독립 — 탯줄을 끊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심리적 독립, 혹은 심리적 탯줄 끊기란 부모와의 정서적 융합 상태에서 벗어나 각자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식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거리 두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가 한동안 그 둘을 혼동했습니다.
저는 독립한 뒤 부모님께 덜 연락하는 걸 심리적 독립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그건 그냥 방치였습니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분리란 부모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이제 내가 어른으로서 먼저 손을 내미는 방향으로 관계의 구조가 바뀌는 것입니다.
가족 심리학에서는 이 건강한 분리 정도를 '분화도(Differentiation of Self)'라는 개념으로 측정합니다. 분화도란 감정과 이성을 분리해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뜻합니다(출처: Psychology Today). 분화도가 낮은 가족은 한 사람이 화를 내면 다른 사람도 즉각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그 감정이 증폭되어 돌아오는 패턴을 반복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 부모님과 다툴 때마다 그 싸움이 왜 그렇게 쉽게 커졌는지, 이 개념을 알고 나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또 한 가지, 모성애와 부성애가 본능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시각도 여기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본능이란 자극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고정 행위 패턴을 말합니다. 가시고기가 붉은색을 보면 조건 없이 달려드는 것처럼요. 하지만 아이를 향해 매일 좋은 선택을 해온 부모의 사랑은, 그 자동성과 거리가 멉니다. 그 사랑이 선택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아름다운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성인 자녀의 역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안부를 묻고 밥 한 끼 같이 먹자고 먼저 연락하는 것, 이것도 자동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생기는 행동입니다. 제 경험상, 이 선택을 한번 하고 나면 다음 선택은 조금 더 쉬워집니다.
가족 회복 — 작은 챙김이 온도를 바꾼다
그날 이후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안부 전화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습니다. 별다른 용건 없이 전화를 드리는 게 낯설었고, 수화기 너머 아버지도 "어, 그래, 별일 없다"를 세 번 반복하다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통화가 쌓이면서 뭔가가 달라졌습니다.
어머니가 무릎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아버지가 예전부터 좋아하시던 과자가 단종됐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전부 그 통화들 덕분이었습니다. 안부를 묻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말은 가족 사이에서도 착각에 가깝습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가족건강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정서적 지지를 주고받는 가족 관계가 개인의 심리적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유의미하게 높인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출처: 한국건강증진개발원). 회복탄력성이란 어려운 상황에서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거나 오히려 더 성장하는 심리적 능력을 말합니다. 가족 간의 작은 챙김이 단순한 정서 교류를 넘어, 개인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자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특히 생일 챙기기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전화 한 통, 카카오 선물하기로 보낸 작은 케이크 하나가 부모님께 그렇게 큰 의미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그 케이크 사진을 몇 주 동안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려두셨습니다. 그 사진이 저한테는 꽤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습니다. 좋은 쪽으로요.
반대로 가족 안에서 상처가 반복되는 구조, 즉 고통을 서로 주고받는 악순환이 고착된 경우라면 가족 전체의 분화도 수준을 점검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담을 통해 자신이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분석받는 과정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단순히 공감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패턴을 직접 들여다보는 구조적 분석이 포함된 상담을 권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부모님과 대화가 원래 없었는데, 이제 와서 연락을 시작하는 게 어색하지 않나요?
A. 저도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습니다. 수화기를 들고도 뭘 말해야 할지 몰라서 잠깐 멍하게 있다가 전화를 드린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밥은 먹었어요?" 한 마디로도 충분했습니다. 어색함은 횟수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옅어집니다. 완벽한 대화를 준비하려다가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짧더라도 먼저 연락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Q. 부모님이 저한테 상처를 많이 줬는데, 그래도 먼저 다가가야 하나요?
A. 이건 솔직히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욕설이나 착취처럼 분명한 폭력이 있었던 관계라면 무조건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혈연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폭력은 단호하게 경계를 그어야 합니다. 다만 단순히 표현이 서툴거나 무뚝뚝했던 부모님이라면, 그 서투름이 무관심과 같은 뜻은 아닐 수 있습니다. 맥락을 구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Q. 성인 자녀가 결혼하면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요?
A. 자녀가 성인이 되는 순간부터 부모는 서서히 한 걸음씩 물러서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결혼 후에는 새로운 배우자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내 마음에 꼭 들지 않더라도, 자녀의 삶은 자녀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탯줄을 완전히 끊는다는 건, 자녀의 선택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에서 완성됩니다.
Q. 부모님께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는 게 너무 낯간지럽습니다. 꼭 해야 하나요?
A. 저도 이게 제일 어렵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어려워하는 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꼭 그 말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랑 밥 먹고 싶어서요"라는 한 마디가 어쩌면 더 구체적이고 진심 있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어떤 형태든, 상대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준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론
가족은 혈연으로 자동 완성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렇습니다. 안부를 묻고, 생일을 기억하고, 밥 한 번 같이 먹자고 먼저 연락하는, 그 능동적인 선택들이 쌓여야 비로소 진짜 가족의 온도가 만들어집니다.
부모님도 사람이고, 저도 여전히 배우는 중입니다.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자녀도 없습니다. 다만 오늘 안부 전화 한 통을 미루지 않는 것, 그것에서 변화가 시작된다고 저는 매일 조금씩 확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