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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이의 의욕을 꺾고 있었다면 어떨까요. 저도 그랬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에게 "수고했어"라고 건넸을 때, 아이는 말없이 방문을 닫아버렸습니다. 부모의 말 한 마디가 아이의 내면에 어떤 지도를 그리는지, 직접 달라진 경험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했습니다.

"타고났네"가 아이에게서 노력을 빼앗는 이유
TV에서 손흥민 선수의 플레이가 나올 때 옆에서 "쟤는 타고났어"라고 무심코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감탄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아이한테는 꽤 다른 의미로 흡수됐을 것 같습니다.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것은 능력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계속 키워나갈 수 있다는 믿음 체계를 의미합니다.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자 캐럴 드웩의 연구에 따르면, 이 마인드셋을 가진 아이들은 실패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더 도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출처: Stanford University). 반대로 "타고났다"는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 언어에 반복 노출된 아이들은 노력 자체를 불필요하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타고났네"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란 아이는 친구가 공부를 잘해도 '쟤는 원래 그런 애야'라고 귀결 지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논리는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나는 그 재능이 없으니 해봤자 소용없어.'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 생각보다 일찍, 그리고 조용히 심어지는 방식입니다. 학습된 무기력이란, 반복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노출될 때 결국 스스로 아무 시도도 안 하게 되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타고났다"는 말을 완전히 금지해야 할까요.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언어를 금지하는 것보다 재정의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노력해서 시험 점수를 5점 올려왔을 때 "네가 흥미를 갖고 열심히 했잖아, 그게 바로 타고난 거야"라고 말을 바꿔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타고난다'는 개념이 '하늘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으로 아이 안에서 재구성됩니다.
- "타고났네" → 노력의 가치 소거, 무기력 유발
- "운이 없네" → 외부 귀인 습관, 자기효능감 저하
- "타고났다 = 내가 만들어가는 상태"로 재정의 가능
노력을 기억해 주는 말 한 마디가 방문을 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큰아이가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저는 늘 하던 대로 "수고했어, 고생했다"라고 말했고, 아이는 예상대로 "몰라, 피곤해"라며 문을 닫았습니다. 그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고했다는 말이 왜 공부를 힘든 일로 정의하는 걸까.'
"애썼어, 수고했어"라는 말은 좋은 의도로 건네지지만, 언어가 아이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릅니다. 공부 = 힘든 일 = 보상이 필요한 일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아이 머릿속에 자리 잡는 것입니다. 아이가 시험이 끝나자마자 게임이나 간식을 찾는다면, 그건 게으른 게 아니라 부모의 언어가 만든 보상 회로(Reward Circuit) 일 수 있습니다. 보상 회로란 특정 행동 뒤에 보상이 따른다는 조건화된 기대 반응을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방식을 바꿔봤습니다. "시험 준비하면서 늦은 밤까지 책상에 앉아 있던 네 모습이 엄마 머릿속에 다 남아 있어. 그 시간이 자랑스러워."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집중하는 언어였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이가 방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근데 나 이번에 실수한 문제가 있었어"라며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단 한 마디가 바꿔놓은 장면이었습니다.
과정 중심 언어(Process-Focused Language)는 결과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투자한 시간과 태도 자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방식입니다. 미국 심리학회(APA) 자료에 따르면, 이런 방식의 피드백은 아이의 내재적 동기를 높이고 실패 앞에서도 회복력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물론 매 순간 이렇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아침에 감정이 먼저 터지고 저녁에 후회하는 날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아닌 "그 사람이 보낸 시간"을 기억해 주는 말 한 마디가, 관계를 여는 열쇠가 된다는 사실만큼은 제 경험으로 확인했습니다.
일상의 말이 아이의 가치발견 능력을 키운다
제가 꽤 오래 무심코 써온 말이 있습니다. "돈까스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이 문장이 아이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꽤 넓습니다. '세상은 다 똑같아. 비교할 필요 없어. 최선을 다해봤자 별 차이 없어.' 언어는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인지 프레임(Cognitive Frame)을 만듭니다. 인지 프레임이란 어떤 정보를 어떤 맥락과 의미 구조로 해석하느냐를 결정하는 사고의 틀을 말합니다.
반대로 "지난주 돈까스랑 오늘 거랑 뭔가 좀 다른 것 같지 않아?"라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생각을 시작합니다. 차이를 찾고, 발견하고, 그것을 부모에게 설명합니다. 이 단계가 사실 상당히 중요합니다. 무언가를 관찰하고, 표현하고, 설명까지 할 수 있는 아이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비전문가의 단계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는 질문을 저도 꽤 오래 붙들고 있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것은 AI가 이미 우위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발견한 것을 언어로 표현하고, 왜 그렇게 느꼈는지 상대방에게 설명할 수 있는 힘은 일상의 대화 안에서 자랍니다.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보다 "왜 이 선을, 이 색을 여기 놓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되듯이, 아이도 발견한 것을 설명하는 능력이 쌓일 때 비로소 예술적 사고를 갖춘 사람으로 자라납니다.
"목소리 작은 사람이 있으면 우리가 더 가까이 가면 되지"라고 말하는 부모 옆에서 자란 아이는 장애를 회피 이유가 아닌 접근 이유로 읽는 법을 배웁니다. 이게 처음엔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이런 식의 재해석이 억지스럽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몇 번 써보고 나니, 아이가 그 언어의 방향을 그대로 흡수하더라고요. 가능성 지향 언어(Possibility-Oriented Language)라고 부를 수 있는데, 불가능을 전제로 결론 내리는 대신 가능성의 단서를 먼저 찾아주는 말하기 방식입니다. 부모가 이 언어를 쓰면, 아이도 그 렌즈로 세상을 보기 시작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수고했어"가 정말 안 좋은 말인가요? 그냥 위로 아닌가요?
A. "수고했어"가 나쁜 말이라기보다, 그 말이 아이에게 공부를 '힘든 일, 보상이 필요한 일'로 정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위로의 의도와 아이가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죠. 저도 처음엔 그냥 따뜻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말을 바꿔보고 나서 아이 반응이 달라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완전히 금지할 필요는 없지만, "네가 열심히 했던 그 시간을 기억해"처럼 과정을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말로 보완하면 훨씬 효과적입니다.
Q. 사춘기 아이한테도 이런 말이 효과가 있을까요?
A.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춘기 이후에는 확실히 더 어렵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언어 습관이 쌓여온 관계라면 갑자기 말을 바꿔도 아이가 당황하거나 어색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한꺼번에 바꾸려 하기보다, 딱 한 마디씩 과정을 알아봐 주는 언어를 꾸준히 건네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봅니다. 변화는 느리지만, 아예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Q. "타고났네"라는 말을 재정의해서 쓰면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A. 의외로 잘 통합니다. 제 경험상 아이들은 부모가 진지하게 설명해 줄 때 꽤 잘 받아들입니다. "타고난다는 건 하늘이 준 게 아니라, 네가 흥미를 갖고 노력하는 그 상태를 말하는 거야"라고 한 번 정의해 주면, 그 다음부터 아이가 그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한 번에 완벽하게 전달될 거라고 기대하기보다, 비슷한 상황이 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반복해 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Q. 말습관을 바꾸고 싶은데 감정이 먼저 올라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저도 아침에 버럭하고 저녁에 후회하는 날이 여전히 많습니다. 감정이 앞설 때 억지로 좋은 말을 하려다 오히려 더 폭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감정이 언어로 정리될 때까지 잠시 침묵하는 것, 그것 자체가 이미 말습관 교정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부모의 말은 아이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첫 번째 렌즈가 됩니다. "타고났네"가 노력의 언어를 지우고, "수고했어"가 공부를 고통으로 정의하며, "다 거기서 거기지"가 차이를 발견하는 눈을 닫아버린다는 사실을, 저는 아이의 방문이 닫히고 나서야 실감했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말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딱 하나만 바꿔도 됩니다. 결과 대신 과정을, 탄식 대신 가능성을 찾는 말 한마디. 아이와 함께 밥을 먹거나 TV를 보는 오늘 저녁, 그 작은 언어의 방향이 아이의 내면 지도를 다시 그리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말이 자라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길을 잃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