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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은 겉모습만 봐도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인지 깨닫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로 수십 년간 범죄 현장을 분석해 온 표창원 소장의 강연을 듣고, 저 스스로의 편견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범죄 예방의 출발점은 범죄자를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분리하려는 심리를 걷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범죄자 편견, 우리가 믿고 싶은 것과 현실의 간극
흉악 범죄자의 얼굴이 공개될 때마다 댓글에는 어김없이 "저 눈빛 봐라, 처음부터 범죄자 상이잖아"라는 반응이 넘칩니다. 저도 솔직히 말하면 뉴스를 보면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건 사후 확증 편향(hindsight bias), 즉 결과를 알고 난 뒤에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기억을 재구성하는 심리적 오류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수십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 서울 한복판의 원룸에서 평범한 이웃으로 살며 동네 식당을 다니고 마트에서 장을 봤습니다. 그 누구도 그 '싸늘함'을 미리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만약 범죄자에게만 있는 특유의 인상이 실재했다면, 범죄는 진작에 예방됐을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이미 반증된 믿음이죠.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한 유명 미식축구 스타가 살인 혐의를 받았을 당시, 타임과 뉴스위크 모두 그의 사진을 표지에 실었는데 같은 얼굴이어도 스타 시절 사진과 피의자 시절 사진은 전혀 다른 인상으로 읽혔습니다. 앵글, 조명, 보정 하나로 '범죄자 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 보도가 증명한 셈입니다. 제가 직접 두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봤는데, 스스로도 선입견에 얼마나 취약한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습니다.
- 사후 확증 편향: 결과를 안 뒤 "처음부터 알아봤다"고 기억을 왜곡하는 심리적 오류
- 범죄자 고유의 인상이나 눈빛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음
- 언론의 앵글과 편집만으로도 동일인의 인상이 전혀 다르게 읽힘
- "저 인상이면 범죄자"라는 확신은 실제로 사기당할 가능성을 오히려 높임
관계기반범죄, 일반 범죄와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한 이유
교제 폭력이나 가정 폭력을 묶어 요즘은 관계기반범죄(Relationship-Based Crime)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관계기반범죄란, 피해자와 가해자가 이미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서 외부에서 폭력의 존재를 인지하기 어렵고, 피해자 스스로도 관계를 완전히 끊지 못하는 구조적 특성을 지닌 범죄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위험한 범죄'입니다.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신고를 하면 그것이 피해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 경험상 이건 정말 다릅니다. 신고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한계에서 나오는 것이지, 피해의 시작점이 절대 아닙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신고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이미 수십 차례의 폭력이 반복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이 범죄의 가해자 심리를 들여다보면, 상대의 거절을 자기 전 인격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피해자가 거절하는 것은 특정 폭력성이나 맞지 않는 부분 때문인데, 가해자는 그것을 "감히 나를 거절해"라는 분노로 치환하며 굴복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집착이 고착됩니다. 그러다 보니 신고 후 오히려 보복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뉴스에서 반복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 범죄가 친고죄 또는 반의사불벌죄로 분류됐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친고죄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를 말하고,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뜻합니다. 가해자가 협박이나 懐柔로 피해자의 고소 의지를 꺾으면 사건 자체가 소멸되는 구조였으니, 사실상 피해자를 보호할 장치가 없었던 셈입니다.
자녀안전교육, 말보다 행동 반복이 실제로 작동했다
일반적으로 아이에게 "낯선 사람 조심해"라고 말로만 단단히 일러두면 충분할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완전히 달랐습니다. 저도 한때 "나쁘게 생긴 사람 피해"라는 모호한 주의를 주는 것으로 안전 교육을 마쳤다고 자위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자체가 위험한 안일함이었습니다.
표창원 소장이 강조한 핵심은 행동 치료(Behavior Therapy) 기반의 반복 훈련입니다. 행동 치료란 특정 행동에 일관된 보상과 제지를 반복적으로 연결해 바람직한 행동 패턴을 몸에 익히게 하는 방법입니다. 아이에게 "위험해"라는 말은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지만, 위험한 방향으로 가려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제지를 경험하면 몸이 먼저 위험을 인식하게 됩니다.
저도 며칠 전부터 직접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초인종이 울려도 "누구세요?"라고 묻기만 하고 절대 문을 열지 않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예상대로 처음에는 제가 직접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아이가 덜컥 문을 열었습니다. 화를 내는 대신 다시 차분하게 상황극을 이어갔고, 세 번째 반복 훈련 뒤에야 아이가 "엄마 아빠가 와도 먼저 목소리 확인할 거야"라며 문고리를 굳게 잡고 버텼습니다. 솔직히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낯선 어른이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으려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는 하되, 살짝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저 어른이 만지시면 불편해요"라고 말하는 연습을 반복하면, 어른 입장에서도 자연스럽게 경계를 느끼고 "야, 똘똘하네"라며 넘어가게 됩니다. 중요한 건 아이가 예의를 지키면서 동시에 자기 신체 경계를 지키는 두 가지를 양립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대사와 행동을 반복 훈련시키는 것입니다(출처: 경찰청 아동여성청소년대상범죄 예방 안전드림).
자주 묻는 질문
Q. 사이코패스는 겉모습이나 말투로 알아볼 수 있나요?
A. 일반적으로 사이코패스는 특유의 눈빛이나 인상으로 구별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습니다. 심리학 전공자나 정신과 의사조차 사기를 당하거나 피해를 입는 사례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딱 보면 안다"는 자신감은 오히려 믿을 만한 외모를 가진 실제 가해자에게 당할 위험을 키웁니다.
Q. 데이트 폭력 피해자가 신고를 자꾸 취하하는 건 왜 그런 건가요?
A. 관계기반범죄의 특성상 피해자는 관계 자체를 완전히 끊을 수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고의 목적이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극심한 고통을 멈추는 것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찰이 개입하자 잠시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고소를 철회하게 됩니다. 신고 취하를 피해자의 의지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안전한 분리와 지속적인 보호 체계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Q. 아이에게 낯선 사람 경계 교육을 몇 살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A. 말을 이해하기 이전부터 행동 기반 훈련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위험한 방향으로 가려 할 때 자연스럽게 제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대화가 가능한 시기가 되면 구체적인 상황극을 반복하며 "예의를 지키면서 신체 경계도 지키는" 두 가지를 동시에 익히게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한 번 가르쳤다고 끝나지 않으며, 실수해도 혼내지 않고 차분히 반복하는 인내심이 핵심입니다.
Q. 범죄는 타고나는 건가요, 환경 때문인가요?
A. 타고난 유전적 형질, 성장 환경, 그리고 본인의 선택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단일 인자로 결정된다는 연구 결과는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공격적인 성향을 타고났어도 적절한 양육과 교육이 이루어지면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방향입니다.
결론
범죄 예방에서 가장 먼저 걷어내야 할 것은 범죄자는 겉으로 티가 난다는 편견입니다. 그 편견이 오히려 경계를 낮추게 만들고, 정작 평범한 얼굴로 다가오는 위협을 놓치게 합니다. 제가 직접 아이와 상황극을 반복해보니, 말 한마디보다 몸으로 익힌 습관 하나가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관계기반범죄와 학교 폭력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해자를 향한 분노와 응징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실질적인 회복과 방관자가 연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것이 강연을 듣고 난 뒤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오늘 당장 자녀와 단 10분짜리 상황극 하나를 시작해 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