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꽤 오랫동안 '잘 산다'는 게 뭔지 몰랐습니다. 회사에서 실적 순위가 붙는 순간부터 불안이 시작됐고, 그 불안을 없애려고 더 열심히 달렸는데 결국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이었죠. 그러다 아이를 낳고 집에 있게 되면서,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이야기가 귀에 꽂혔습니다. '이기적인 야망'과 '도덕적 야망'은 결국 다른 결말을 맞는다는 것. 직접 겪어보니 이게 그냥 철학적 담론이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능력주의라는 함정 — 우리가 줄 세운 건 아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 저는 KPI(핵심성과지표)라는 숫자에 완전히 지배당해 살았습니다. 여기서 KPI란 조직이 목표 달성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만든 정량적 기준으로, 쉽게 말해 '이 숫자가 곧 너의 가치'라는 메시지를 매일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저는 그 숫자가 좋으면 괜찮은 사람, 나쁘면 뒤처진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것을 능력주의(meritocracy)의 폐해라고 정확하게 짚었습니다. 능력주의란 노력과 재능에 따라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원칙인데, 문제는 그 '능력'의 기준 자체를 사회가 인위적으로 설정한다는 점입니다. 수능 점수, 영어 점수, 스펙의 두께 — 이것들은 누군가가 임의로 정한 잣대일 뿐인데, 우리는 그걸 마치 절대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아이들을 그 줄에 세웁니다(출처: 하버드 정의론 강의 공식 사이트).
지금 아이를 키우면서 제가 가장 경계하는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이 나이엔 이걸 해야 해", "또래보다 늦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슬금슬금 올라올 때마다, 그게 아이를 위한 걱정인지 저 자신의 불안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건지 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솔직히 아직도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 능력주의의 기준은 사회가 인위적으로 설정한 것이지, 한 사람의 실제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다
- KPI식 사고방식은 직장뿐 아니라 육아와 교육 현장에도 그대로 옮겨붙는다
- 줄 세우기 불안은 아이보다 부모(기성세대)에게서 먼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평판의 진화생물학 — 착하게 사는 게 결국 이긴다는 증거
최재천 교수가 꺼낸 이야기 중 제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개미 군집 연구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일하는 20%를 싹 없애면 나머지 중에서 또 20%가 일어나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평소에 절대 일 안 하던 무임승차자들이 군집이 정말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나선다는 것입니다. 이걸 진화생물학에서는 '집단선택(group selection)'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데, 쉽게 말하면 사회 전체가 살아남기 위해 구성원들의 역할이 분산·보완되도록 설계돼 있다는 뜻입니다.
사회적 평판(social reputation)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파생됩니다. 사회적 평판이란 집단 안에서 한 개체가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진화생물학적으로 이 평판이 높은 개체가 장기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다는 연구가 다수 축적돼 있습니다(출처: Nature 학술지). SNS 하나로 수십 년 쌓은 평판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걸 우리가 매일 목격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제가 회사에서 단기 실적에만 매달리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때 제 사회적 평판이 어떠했는지 부끄럽습니다. 당장의 수치를 채우기 위해 동료와 협력보다는 경쟁을 택했고, 그게 단기적으로는 성과처럼 보였지만 관계라는 자산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나이스 가이가 결국 이긴다는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결론이라는 걸 이제는 믿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아이에게 물려주는 법 — 부모가 먼저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최재천 교수는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꼭 이렇게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절대로 듣지 말아야 할 말씀은 부모님 말씀." 물론 반전이 있는 말이죠. 부모는 복종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의 대상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말이 저한테는 역방향으로도 읽혔습니다. 그러면 부모인 저는 아이에게 설득당할 준비가 돼 있는가, 하고요.
도덕적 야망(moral ambi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기적 야망이 개인의 부와 지위를 최대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면, 도덕적 야망은 자신의 재능과 에너지를 타인과 사회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쓰려는 동기를 말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게 순수한 이타심이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내면의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최재천 교수 본인도 "들켰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인간 심성 깊은 곳에 이미 심어진 욕구라는 거죠.
저는 지금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치려는' 조급함보다, 아이가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쉽지 않습니다. 또래 아이들이 뭔가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저도 모르게 손이 움직이니까요. 하지만 70이 다 돼서야 "내가 소질이 있나봐"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그리고 내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지금 제가 먼저 그 조급함을 내려놓는 게 순서라는 걸 매일 되새깁니다.
기성세대가 변하지 않으면 젊은 세대의 도덕적 야망은 싹도 트기 전에 꺾입니다. "네 일이나 잘 챙겨"라는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닫아버리는지, 저도 부모에게 그 말을 들어봤기 때문에 압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도덕적 야망이 결국 이긴다는 게 현실에서도 통하나요?
A. 진화생물학 연구들은 사회 집단 안에서 장기적으로 협력하고 선한 평판을 쌓은 개체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다는 결론을 일관되게 내놓고 있습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이기적 전략이 더 빠른 이득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겪어보니 단기 실적을 위해 쌓은 것들은 생각보다 빨리 허물어졌고, 관계와 평판에 투자한 시간은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
Q. 능력주의가 나쁜 건가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틀린 건가요?
A.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는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 자체가 사회가 임의로 설정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수능 고득점이 한 사람의 전체 가치를 대변할 수 없듯이, 그 기준 밖에 있는 재능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마이클 샌델 교수가 하버드의 입시 기준 자체를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Q. 아이가 하고 싶은 걸 찾을 수 있게 도와주려면 부모가 뭘 해야 하나요?
A. 제가 실천하고 있는 건 딱 하나입니다. 비교하는 말을 최대한 줄이는 것입니다. "저 아이는 벌써 저걸 하는데"라는 말 대신 "오늘 뭐가 제일 재밌었어?"를 더 자주 묻는 쪽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최재천 교수 표현대로 부모는 복종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의 대상이라면, 아이가 설득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주는 게 부모 역할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Q. 사회적 평판은 어떻게 쌓는 건가요?
A. 거창한 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최재천 교수도 "계산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했는데 어느 날 기회가 오더라"고 했습니다. 제 경험상 일관된 태도, 즉 이득이 없어도 옳은 방향을 택하는 반복적인 행동이 결국 가장 단단한 평판이 됩니다. SNS에서 하루 만에 무너지는 평판을 우리가 매일 보는 이유도, 행동과 말이 따로 놀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결론
저는 아직도 조급해질 때가 있습니다. 아이 또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 한켠이 흔들리고, 내가 너무 느슨하게 키우는 건 아닌가 싶은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되묻습니다. 지금 이 불안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제가 내면화한 능력주의적 잣대가 작동하는 건지를요.
도덕적 야망은 거창한 사명감이 아닙니다.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작은 욕망, 내 행동이 주변에 좋게 기억됐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에서 이미 시작돼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먼저 줄 세우기를 멈추고 그 여백을 만들어줄 때, 다음 세대가 그 안에서 자기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여백을 만드는 부모가 되는 연습을 오늘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