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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저는 꽤 오랫동안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거창한 자기 긍정 선언 같기도 하고, 요즘 유행하는 마케팅 문구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퇴근 후 저녁, 침대에 누워 바디로션 하나 바르기 귀찮아 그냥 잠든 날 밤, 그 의미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귀찮음을 이기는 것이 자기 돌봄의 실체다
매일 퇴근 후 녹초가 된 상태로 집에 돌아오면, 씻는 것조차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안을 마치고 나서 바디로션을 꺼내는 그 짧은 동작이 어떤 날은 정말 불가능한 미션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핸드폰을 손에 쥔 채 그냥 잠들고, 아침엔 푸석한 피부와 밀린 피로를 안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꼭 이런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나 자신을 챙기지 못할까.'
자기 돌봄(Self-care)이란, 스스로의 신체적·정서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취하는 행동들을 뜻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의도적'이라는 단어입니다. 기분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귀찮아도 내가 나에게 해주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1시간 반 거리를 달려가는 마음을 나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처음에는 정말 어색했습니다. 잠들기 전 10분을 억지로 내어 바디로션을 꼼꼼히 바르는 그 행동이 너무 사소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3일, 5일, 일주일이 지나자 분명히 다른 감각이 왔습니다. 타인이 해주는 위로와는 결이 다른, 내가 나를 챙겼다는 조용한 만족감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의 누적으로 설명합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나는 내 삶을 스스로 다룰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하는데, 이 믿음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작고 반복적인 실천에서 쌓입니다. 바디로션을 바르는 일, 아침에 물 한 잔을 챙기는 일, 이런 것들이 실제로 그 누적의 재료가 됩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제 경우엔 이 작은 실천들을 통해 자책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왜 나는 이것도 못 하나'에서 '오늘도 내가 나에게 뭔가 해줬네'로 조금씩 이동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미세한 관점의 전환이 실제로 아침을 시작하는 기분을 바꿔놓았습니다.
- 자기돌봄은 기분이 좋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귀찮아도 의도적으로 해주는 것이다
- 바디로션, 물 한 잔, 짧은 스트레칭처럼 사소한 습관이 자기효능감을 누적시킨다
-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장점만 보는 맹목적 긍정이 아니라, 장단점을 통합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다
휴식을 죄책감 없이 허락해야 지속이 가능하다
저도 한때 '쉬는 건 나중에'라는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주말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왠지 뒤처지는 것 같고, SNS에는 운동하고 독서하고 자기 계발 중인 사람들이 넘쳐나니 그 불안이 더 컸습니다.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하던 어느 주간, 결국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번아웃(Burnout)이었습니다.
번아웃이란 과도한 스트레스가 장기화되면서 신체적·정서적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차에 기름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로 계속 달리려는 것과 같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2019년부터 국제질병분류(ICD-11)에 직업 관련 현상으로 정식 포함시켰습니다. 출처: World Health Organization
이 경험을 겪고 나서야 휴식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동안 차는 시동을 끄고 가만히 있습니다. 겉보기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음 주행을 위한 에너지를 채우고 있는 중입니다. 휴식도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려웠던 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을 인정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뭔가 게으른 것 같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감각이 그 마음을 자꾸 눌러버렸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억압된 욕구의 반동(Suppression-rebound effect)으로 설명합니다. 억압된 욕구란 지속적으로 눌러진 내적 충동이 결국 더 강한 형태로 터져 나오는 현상입니다. 식욕을 완전히 억제하면 폭식으로 이어지듯, 쉬고 싶은 마음을 계속 억누르면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주저앉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시도한 것은 능동적 지연 행동(Active procrastination)입니다. 능동적 지연 행동이란 단순히 미루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특정 행동을 나중으로 선택하는 전략입니다.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들을 '하면 좋은 일'과 구분하고, 후자는 의식적으로 오늘은 안 해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입니다. 주말에 죄책감 없이 하루를 비워두기 시작한 뒤, 오히려 다음 주의 집중력이 눈에 띄게 회복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예상 밖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자기돌봄을 시작하려는데 뭐부터 해야 하나요?
A. 제 경험상 가장 효과적인 출발점은 '이미 좋은 줄 알지만 귀찮아서 안 하고 있는 것' 하나를 고르는 것입니다. 바디로션, 아침 물 한 잔, 짧은 스트레칭처럼 5~10분이면 되는 행동으로 시작하면 심리적 부담이 적습니다. 거창한 루틴보다 작고 반복 가능한 것이 자기효능감을 더 빠르게 쌓아줍니다.
Q.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이 드는 게 정상인가요?
A. 정상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성취 욕구와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욕구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욕구는 공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입니다. 문제는 한쪽을 완전히 억누를 때 발생합니다. 쉬고 싶은 마음을 미워하지 말고, 그 마음에 어느 정도 공간을 허락해 주는 것이 번아웃을 예방하는 방법입니다.
Q. 능동적 지연 행동과 그냥 게으름은 어떻게 다른가요?
A. 핵심 차이는 '의지의 유무'입니다. 능동적 지연 행동은 해야 하는 일과 하면 좋은 일을 먼저 구분한 뒤, 후자를 의식적으로 오늘은 안 하겠다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게으름과 달리, 이 선택은 내 에너지를 보존하고 다음 행동을 위한 여지를 만드는 전략적 판단에 가깝습니다.
Q. 걱정이 너무 많아서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걱정과 불안은 인간이 진화적으로 갖게 된 생존 반응이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대신 '걱정 시간'을 따로 정해두는 방법이 실용적입니다. 예를 들어 매일 저녁 10시에서 10시 15분 사이에만 걱정을 집중해서 하기로 정하면, 다른 시간대에 불쑥 떠오르는 걱정을 '그건 걱정 시간에 하자'고 미룰 수 있습니다. 이렇게 통제감을 회복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결론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깨달음의 순간이나 특별한 감정 상태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경험해보니 그건 감정이 아니라 행동에 가까웠습니다. 귀찮아도 바디로션을 바르는 것, 죄책감 없이 하루를 비워두는 것, 번아웃이 오기 전에 스스로에게 '괜찮아?'라고 묻는 것. 이 사소한 행동들이 쌓여 나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돌봄과 휴식을 의무나 보상으로 보는 시각 대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필수 연료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 저는 그 작은 관점의 전환이 실제로 하루의 질을 바꿔놓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딱 하나만 골라 귀찮지만 나에게 좋은 것을 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