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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몰입 사회 (감정 과잉, 트라우마, 조종간)

알짜정보 노트 2026. 11. 4. 09:49

목차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한때 상사의 말 한마디에 "이거 트라우마 아니야?"라고 진지하게 중얼거리던 사람이었습니다. 내 감정을 돌보는 것이 곧 성숙한 어른의 태도라고 굳게 믿었고, 불쾌한 기분이 들 때마다 그 감정의 원인을 캐내는 데 저녁 시간을 통째로 써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파헤칠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졌습니다. 독일의 임상심리 치료사 기타 야코프가 쓴 『과몰입 사회』는 바로 그 역설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과몰입 사회 (감정 과잉, 트라우마, 조종간)
    과몰입 사회 (감정 과잉, 트라우마, 조종간)

    감정 과잉 시대,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을까

    제가 직접 경험해 봤는데, 감정을 돌보는 일이 습관이 되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작은 불편함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이름을 붙여야 직성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이건 경계 침범이야", "저 사람은 나르시시스트야", "나 지금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어"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오게 되죠.

    여기서 잠깐, 트라우마(Trauma)가 원래 무슨 뜻인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상처'를 뜻하며, 의학에서는 칼에 베이거나 둔기에 맞아 신체에 실질적 손상이 생긴 상태를 가리켰습니다. 즉, 트라우마는 원래 몸에 난 진짜 상처에서 출발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회의실에서 아이디어가 반박당하거나 친구가 카톡 답장을 늦게 보내도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따라붙습니다.

    기타 야코프는 독일 사회를 예로 들지만, 제가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내면 아이 치유, 마음 챙김(Mindfulness), 감정 지능(EQ) 관련 책이 즐비합니다. 감정 지능이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뜻하는데, 이것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오히려 부정적 감정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입니다.

    항생제를 남용하면 내성균이 생기듯, 감정 돌보기를 과도하게 하면 오히려 상처가 덧납니다. 저자는 이것을 "모기에 물린 것을 계속 긁어서 코끼리에게 밟힌 것처럼 만드는 일"이라고 표현하는데, 제가 읽으면서 가장 크게 공감한 비유였습니다.

    • 트라우마라는 단어의 남용이 진짜 트라우마 피해자의 고통을 희석시킬 수 있습니다
    • 독성 인간, 나르시시스트 판별법이 넘쳐나면서 정작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줄어들었습니다
    • 부정적 감정을 피하려 할수록 오히려 그 감정이 더 자주 떠오르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요약: 감정 돌보기 문화 자체는 필요하지만, 과도한 과몰입은 오히려 부정적 감정을 키우는 역효과를 낳습니다.

     

    트라우마와 감정, 진짜 정체를 알고 나서야 보이는 것

    『과몰입 사회』에서 제가 밑줄을 그으며 읽은 문장이 있습니다. "모든 감정에는 깊은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약간 냉소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는데, 의사의 시각에서 풀어낸 그다음 맥락을 보니 완전히 수긍이 됐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맞는 말입니다. 수면이 부족하거나 밥을 거를 때, 저는 이유 없이 짜증스럽고 불안해집니다. 그 감정의 원인을 찾겠다며 "혹시 내가 번아웃(Burnout)인가?" 하고 한 시간쯤 생각하기보다, 일찍 밥을 먹고 자는 편이 훨씬 빠르게 회복됩니다. 번아웃이란 극심한 직무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적·정서적 에너지가 고갈되는 상태를 뜻하는데, 출처: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2019년 공식 직업성 현상으로 분류했습니다. 하지만 진단명을 붙이기 전에, 먼저 혈당과 수면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고 저도 공감합니다.

    저자는 감정의 성격을 크게 세 가지 맥락으로 나눠봅니다. 생리적 신호(배고픔·수면 부족), 타고난 기질, 그리고 정말 어쩔 수 없는 삶의 사건. 이 세 가지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불안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 "평생 불안 없이 살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싸움입니다. 저자는 그 대신 "불안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진정할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에서도 이와 비슷한 접근을 강조하는데, CBT란 부정적인 사고 패턴을 인식하고 수정하는 심리치료 기법으로, 출처: 미국심리학회(APA)가 불안 및 우울 치료에 권고하는 1차 치료법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처럼, 그 자체로 압도적으로 슬픈 일도 있습니다. 그 슬픔을 분석하거나 극복하려 애쓰는 대신 그냥 슬퍼해도 된다는 허락을 이 책이 조용히 건네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이상하게 위안이 됐습니다.

    요약: 모든 감정에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며, 생리적 신호·기질·삶의 사건이라는 세 맥락을 구분하면 감정에 덜 끌려다닐 수 있습니다.

     

    감정의 조종간, 실제로 잡는 연습을 해봤더니

    책이 후반부에서 제안하는 실천 방법 중에서 저도 실제로 써봤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감정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몇 년 전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약 12일 정도 매일 저녁 그날의 감정을 짧게 기록해 봤는데, 글로 꺼내 놓으니 생각보다 훨씬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감정이 머릿속에 있을 때보다 종이 위에 있을 때 덜 무서워진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실천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감정 기록: 매일 저녁 그날의 감정을 짧게 써서 객관적 거리를 만드는 연습
    • 이완과 마음 챙김: 천천히 호흡하거나 짧은 명상으로 신체 반응을 먼저 진정시키기
    • 공포와 마주하기: 부정적 감정이 두렵다고 회피할수록 그 감정은 더 커진다는 원리를 이용해, 한 번쯤 그 상황에 직접 부딪혀 보기
    • 확장과 구축: 긍정적 경험을 의도적으로 늘려 삶의 반경을 넓혀가기

    제 경우엔,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공포와 마주하기였습니다.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발표하는 것이 두려울 때, 피하면 다음번엔 더 커진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처음 몇 번은 정말 식은땀이 났지만, 그 자리를 그냥 버텨보니 "어, 이 정도구나" 하는 감각이 생겼습니다.

    스키마 치료(Schema Therapy)라는 개념도 이 맥락에서 나오는데, 스키마 치료란 어린 시절 형성된 부적응적 사고·행동 패턴을 찾아내고 수정하는 심리치료 방식입니다. 저자 기타 야코프는 이 분야의 권위자이기도 한데, 그렇기에 단순히 "감정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훈계가 아니라 임상 현장에서 나온 실질적인 조언이라는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하나입니다. 감정은 삶이라는 차에 함께 태우고 가되, 운전대는 반드시 내가 잡아야 한다는 것. 감정이 운전하게 내버려 두면 목적지를 잃습니다.

    요약: 감정 기록, 마음 챙김, 공포와 마주하기 같은 구체적 실천을 통해 감정의 조종간을 서서히 되찾을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감정을 돌보지 말라는 건가요? 무시하라는 건가요?

    A.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과몰입 사회』는 감정을 하찮게 여기라는 책이 아닙니다. 진짜 정신적 고통이 있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 책이 경고하는 것은, 모기에 물린 것을 코끼리에게 밟힌 것으로 키워버리는 과도한 과몰입입니다.

     

    Q. 트라우마와 일상적 스트레스를 어떻게 구분하나요?

    A. 트라우마는 원래 생명을 위협하거나 극심한 무력감을 주는 사건(사고, 범죄 피해, 전투 경험 등)에서 비롯된 심리적 상처를 가리킵니다. 직장에서의 질책이나 친구의 늦은 답장은 불쾌하고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만, 그 두 가지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구분이 어렵다면 전문 심리사와 상담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Q. 감정 일기, 정말 효과가 있나요?

    A. 제가 직접 써봤을 때는 분명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감정을 글로 꺼내 놓으면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던 것이 눈앞에 고정되어, 한발 물러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쓰면서 계속 곱씹고 파헤치는 방식이 되면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짧고 담담하게 기록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Q. 불안한 기질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기질 자체를 바꾸려는 목표는 처음부터 비현실적입니다. 저자가 권하는 방향은 "불안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미리 계획을 세워두는 것입니다. 불안이 없는 삶이 아니라,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훨씬 지속 가능한 접근입니다.

     

    결론

    저도 한동안은 내 감정이 불편하면 그 원인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그냥 잠을 못 잤거나, 밥을 굶었거나, 원래 비관적인 제 기질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감정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진짜 중요한 감정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과몰입 사회』는 지금 당장 아픈 사람에게 "참아라"고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아직 아프지 않은 사람이 스스로를 환자로 만들지 않도록, 그리고 감정이라는 승객을 태우되 삶의 운전대는 자기 자신이 꼭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책입니다. 짜증이 나거나 불안할 때, 한 번쯤 이렇게 먼저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게 진짜 깊은 상처 때문인가, 아니면 그냥 배가 고픈 건가?"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970MUvVTP1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