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작은 실수 하나를 앞에 두고 "아, 내 그럴 줄 알았어"라고 중얼거린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꽤 자주 그랬습니다. 그 말이 자책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성장을 막는 가장 교묘한 방어 기제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강연을 듣고 나서,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스스로를 합리화해왔는지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어"가 성장을 막는 이유 — 사후확증편향
몇 년 전, 회사에서 보고서 하나를 잘못 제출한 적이 있었습니다. 숫자 하나를 빠뜨린 단순 실수였는데, 팀장님께 지적을 받은 직후 제가 한 말이 "아, 저도 찜찜하긴 했어요"였습니다. 그 순간엔 그게 솔직한 고백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전형적인 자기 보호였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사후확증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라고 느끼는 착각입니다. 인지심리학 분야에서 70년 넘게 연구해 온 이 개념은, 실수를 마주했을 때 뇌가 학습을 회피하고 자아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걸 보여줍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문제는 이 편향이 습관이 되면, 실수를 개선할 동기 자체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알고 있었던 일"은 굳이 바꿀 필요가 없으니까요. 제가 보고서 실수 이후에도 비슷한 실수를 두 번 더 반복한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뇌가 수정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겁니다.
직접 겪어보니, 실수를 유쾌하게 인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특히 경력이 쌓일수록, 모르는 걸 인정하는 게 권위를 잃는 것처럼 느껴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실수했을 때 쓰는 제 나름의 시그니처 멘트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어, 이건 제가 놓쳤네요. 다음엔 여기서부터 다시 보겠습니다." 짧고 담백하게. 그게 전부입니다.
- 사후확증편향은 실수를 "이미 알았던 일"로 포장해 학습 자체를 차단한다
- "내 그럴 줄 알았어"는 자책이 아니라 회피다
- 실수를 인정하는 나만의 시그니처 멘트 하나가 반복 실수를 줄이는 출발점이 된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 자기정의가 있어야 한다
육아를 하면서 참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아이가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면 제가 먼저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고, 아이는 오히려 멀뚱히 저를 쳐다봤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 순간 감정의 주인공이 아이가 아니라 저였던 겁니다. 김경일 교수가 말한 "감정을 빼앗는 부모"의 모습이 정확히 그거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정의 주인이 되어보지 못한 아이는, 나중에 타인의 확신이나 근거 없는 말에 쉽게 흔들리는 어른이 됩니다. 불씻(Bullshit), 우리말로 직역하면 개소리에 해당하는 이 개념은 프린스턴대 철학과 해리 프랭크퍼트 교수가 학문적으로 정의한 용어입니다. 쉽게 말해, 거짓말과 다르게 진실 여부 자체에 관심이 없는 말, 즉 진심으로 하는 헛소리입니다. 거짓말은 팩트 체크에 무너지지만, 이 불 씻은 팩트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출처: Princeton University Press, On Bullshit).
이런 말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자기정의(Self-definition)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 정의란 "나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삶의 핵심 개념에 대해 스스로 내린 기준을 뜻합니다. 이 기준이 없으면, 누군가 강한 확신을 담아 근거 없는 말을 해도 반박할 축이 없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학벌이나 소득이 높아도 자기 정의 없이 살아온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쉽게 흔들리는 걸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노트 한 귀퉁이에 "나에게 ○○이란"을 적어두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그 기준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누군가 강하게 주장하는 말을 들어도 "그건 그 사람의 정의고, 내 정의는 이렇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내 주변에 나르시시스트가 있다면 — 거리두기의 기술
한때 가까이 지냈던 지인 중에 유독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외향적인 사람이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잘 됐다는 소식을 전하면, 대화는 어느새 그 사람의 더 대단한 이야기로 옮겨가 있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게 전형적인 나르시시즘(Narcissism) 성향이었습니다. 나르시시즘이란 자신에 대한 과장된 자아상과 함께 타인을 끌어내려야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느끼는 심리 패턴을 가리킵니다.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타인이 잘돼도 함께 기뻐하지만, 나르시시즘 성향이 강한 사람은 내가 100점 맞는 것보다 남이 100점을 못 맞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성향의 사람은 진실보다 자기 확신을 앞세우는 불 씻을 반복적으로 만들어 냅니다. 자신의 내면 상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런 사람과 관계를 끊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점이요. 관계를 끊는 게 불가능한 직장 동료나 가족이라면, 핵심은 공유 면적을 줄이는 것입니다. 연락 가능한 시간을 좁히고, 공과 칭찬은 반드시 공개된 자리에서만 주고받는 방식으로 독대를 피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 방식이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소모를 줄이는 데 꽤 실질적으로 작동했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분노 조절이 어려운 사람을 대할 때의 방법입니다. 감정 조절 능력은 어릴 때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대신 처리해버리면 형성되지 않는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 대화할 때는 물리적 거리를 살짝 벌리고, 말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추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감정 온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후확증편향이 왜 성장을 막는다는 건가요?
A. "알고 있었던 일"은 굳이 고칠 이유가 없다고 뇌가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처음부터 예상했다는 착각에 빠지면 개선 동기 자체가 사라집니다. 제 경우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 뒤에야 이 패턴을 알아챘습니다. 실수를 담담하게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뇌가 다음 행동을 수정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Q. 자기정의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요?
A.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 없이, "나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처럼 삶에서 자주 쓰는 단어 하나를 골라 짧게 적어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보는 과정 자체입니다. 그 기준이 생기면, 타인의 강한 확신에도 자신의 축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직접 느끼게 됩니다.
Q. 나르시시스트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별하나요?
A.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이 잘 돼도 함께 기뻐하지만, 나르시시즘 성향이 강한 사람은 내가 올라가는 것보다 남이 내려가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특정 집단을 비하하거나 타인을 깎아내려야 자신이 돋보인다는 식의 말이 반복된다면, 그 관계에서 조금씩 공유 면적을 줄이는 편이 낫습니다.
Q. 아이의 감정을 대신 표현하면 왜 문제가 되나요?
A. 부모가 먼저 감정을 쏟아내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탐색하고 조절하는 경험 자체를 잃게 됩니다. 감정 조절 능력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감정의 크기를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형성됩니다. 저도 육아 중에 이 실수를 꽤 반복했고, 그 이후로는 아이가 먼저 반응을 보일 때까지 제 감정을 한 박자 뒤로 미루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실수를 유쾌하게 인정하는 것, 자기 삶에 대한 자기정의를 갖는 것, 나르시시즘 성향의 사람과는 현명하게 거리 두기를 하는 것. 이 세 가지는 따로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나 자신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가장 먼저 체감되는 변화는 외부의 강한 확신에 덜 흔들리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 기준이 조금씩 단단해질수록, 누군가 근거 없이 강하게 몰아붙여도 "그건 그 사람의 정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오늘 당장 거창한 변화를 목표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수했을 때 담백하게 인정하는 멘트 하나부터 만들어보시는 걸, 저는 진심으로 권합니다.